이석우 시인

이석우/ 시인
이석우/ 시인

 

(동양일보) 가침박달나무는 봄의 경지를 깨닫게 한다 하여 “깨침의 꽃”이라고 불리는 불자들이 애지중지하는 나무이다. 그래서 청주 것대산 자락의 화장사에 들리면 이 나무를 만날 수 있는 까닭이 되기도 하였다. 나무를 심어야 할 봄이면 이곳의 스님들은 들리는 이에게 묘목을 나누어 준다. 사람들 사이 나눔이 있는 곳에“깨침의 꽃”은 피어 늘 소중해지는 것이다. 한때는 이 나무를 ‘청주시 나무’로 지정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가침박달나무는 귀룽나무보다 조금 적게 꽃송이를 매달고 있는데 어린 가지를 꺾으면 이상한 냄새가 난다. 그러나 꽃잎의 향기가 은은하여 곤충과 사람의 발길을 떠나지 못하게 만든다. 꽃이 필 시기에는 초록색이던 어린줄기는 차차 붉은색으로 변해가는데, 잎은 어긋나 있고 타원형 또는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으로 끝이 뾰족하다. 그 뒷면은 회백색이고 잎자루의 길이는 1~2cm 정도이다. 볕 잘 드는 산기슭을 좋아하지만 계곡에서도 잘 자란다. 4~5월에 가지 끝에 꽃이 예닐곱 개 피어 총상꽃차례를 이룬다. 꽃잎은 다섯 개의 타원형을 이루고 끝이 오목하게 패여 톱니 모양을 하고 있고 지름은 4cm 정도이다. 꽃받침도 꽃잎을 따라 다섯 갈래로 갈라지는데 꽃이 떨어지면 어느 사이 떨어지고 보이지 않는다. 마치 꽃 같은 아기가 보이지 않으면 어느새 강보도 보이지 않는 것과 같다. 수술은 20여 개, 암술대는 다섯 개다. 타원형의 열매는 9월에 익고 날개가 있다.

나무가 박달나무처럼 단단하다 하여‘박달’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나 실은 박달나무가 아닌, 장미목 장미나무과에 속한다. 정작 박달나무는 참나무목 자작나무과에 속한다.

단군신화에서 단군이 신단수 아래서 고조선을 열었다고 할 때, 이 신단수가 바로 박달나무이다. 『규원사화』〈단군기〉는‘박달나무 檀’의 우리 고유발음으로‘박달(朴達)’ 혹은 ‘백달(白達)’이라 전한다. 박달나무는 고조선 때부터 땅의 광명을 차지한 나무이다. 단궁(檀弓) 활용되었고, 당상나무의 신령수가 되어 치성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수레바퀴살을 만들고 일상용품으로 방망이나 홍두깨, 절구공이 혹은 다식판, 머리빗 등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전북 임실군에 군락지가 있고, 청주에서는 것대산 자락의 화장사에 군락지를 이루며 봄마다 눈처럼 흰 자태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 나무는 중국과 만주 등지에 4종이 분포하고 우리나라에는 1종 1변이종이 있는데 1914년에 발견되어 1997년 12월 30일 천념기념물 387호로 지정되었다.

가침발닥나무는 우리말의‘감치다’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것은‘실로 감아 꿰매다’라는 뜻이다. 꽃진 자리에 남는 열매를 살펴보면 길고 도톰한 반달형 씨방이 칸으로 누어졌는데 이 칸들을 실로 감친 모양을 하고 있어‘가침’이라는 사랑스런 이름을 얻었다.

“무릎에서 사라지는 눈이고 싶었네 // 삼동 내내 동해에 울타리를 두르고 / 내가 바라보며 무릎을 친 것은 / ‘종을 울리고 사라지는 눈(雪)’이었네 // 봄, 어서 오라고 / 아내는 조각 천을 잇대어 종루를 만들고 / 나는 그 무릎에서 사라지는 눈이고 싶었네 // 아내의 바느질이 느는 동안 내 시는 자꾸 뜯어지네 // 봄이 넘실거리고 / 가생이 풀린 살림 감치느라고 아내의 무릎은 다 닳았네 / 나, 그 무릎에 피는 흰 꽃이고 싶었네 / 나, 그 흰 꽃 가침박달나무로 눈멀어 / 화장사 안에 한 열흘 묵고 싶었네 // 연등에서 비원(悲願)이 새어나오는 사월 초파일 / 낮달에 다치면서 것대산(巨叱大山)을 오른 사람들이 / ‘가네 가-네 나를 두고 가-네, 어-하 어-하 / 어이하여 나를 두고 떠나는가, 어-하 어-하’ / 죽은 창꽃을 깨우는 합창소리를 듣고 싶었네.” -한우진의 시 「그 무릎에 피는 흰 꽃이고 싶었네」전문. 한 시인은 가침에서 바느질하는 아내와 그녀의 무릎을 연상해 낸다. 가생이가 다 풀려가는 살림을 감치느라 다 닳은 아내의 무릎은 세파에 시달리던 지아비들의 안식처이다. 이런! 이런! 시인은 이곳에서 흰 꽃으로 피다가 눈처럼 사라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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