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혜 청주시흥덕구민원지적과 주무관

박은혜 청주시흥덕구민원지적과 주무관

(동양일보) “엄마 손에는 왜 혹이 났어요? 낙타 등처럼 볼록해요!”

둘째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잘못했는지 손목이 아팠다. 아직은 젊어서 곧 괜찮아질 거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방치한 손목의 통증은 아이가 자라는 만큼 점점 더해갔고, 결국엔 동그랗고 아담한 ‘혹’이라는 훈장을 남겼다.

평소보다 손목을 많이 쓴 날은 손목이 시큰거려 자면서도 앓을 정도여서 결국 병원에 찾아가게 됐는데 의사는 내 손목에 주삿바늘을 찔러 넣어 물혹을 빼줬다.

하지만 제거한 후에 손목을 사용하면 금세 재발하고, 결국엔 수술을 해서 제거를 해야 하는데 수술 후에도 손목을 많이 혹사하면 다시 재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잔뜩 겁을 먹은 나는 오른팔을 감싸는 손목 보호대를 하고 나타났고, 내 손을 본 아이들은 휘둥그레 토끼 눈을 뜬다.

아이들을 앉혀 두고 근엄하고 위엄 있는 목소리로 “엄마는 이제 집안일을 하면 안 돼. 너희들이 엄마를 도와서 청소하고 빨래하고 설거지해야 해”라고 말했더니, 아이들은 집안일을 놀이라고 생각한 모양인지 신이 났다.

아이들은 역시나 아이다웠다. 아이들이 청소한 자리는 내가 새로이 청소기로 밀어야 했고, 아이들이 설거지를 할 때는 혹여나 그릇을 깨지 않을까 옆에서 전전긍긍했다. 게다가 설거지 후에 남은 세제 잔여물과 바닥에 흥건한 물을 닦아내느라 내가 할 일은 도리어 이중으로 늘어난 셈이었다.

그렇게 고단한 시기가 지나고 일주일 만에 보호대를 제거했지만 물혹은 한 달도 되지 않아 다시 재발하고 말았다. 이제는 체념한 마음으로 내 몸의 일부라 받아들이고 손목을 최대한 쓰지 않으려 노력하니 통증은 점차 사그라졌다.

나의 손목에 생긴 혹은 일종의 ‘프리 패스’가 돼 가족들이 엄마를 배려할 수 있는 기회를 심어줬다. 고작 아홉 살 밖에 되지 않은 큰아이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종이에 심부름 쿠폰을 그려서 줬다. 엄마가 힘들 때 심부름하겠다며 심부름 쿠폰 한 장, 엄마 어깨 아플 때 주물러 주겠다며 마사지 쿠폰 한 장, 장난감 방 치우기 쿠폰 한 장 등 갖다 붙인 이름도 많다.

둘째는 언니 옆에서 시늉한다고 따라 하다가 오히려 일거리만 만들어낸다. 하지만 기특하게도 자기 전엔 내 옆에 딱 달라붙어 내 손에 난 혹을 쓰다듬으며 호호 불어주기도 한다.

제일 효과가 좋은 것은 바로 남편이다. 집안일을 하다 힘들 때면 남편에게 손목을 보여주며 “당신 딸들 낳아 키우느라 손이 이렇게 됐어”라고 말한다. 그러면 남편은 합죽이가 돼 집안일을 한다. 남편도 내가 고생했단 걸 인정하는 걸까, 아직까진 한 번도 토를 달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서로의 일을 도와가며 서로의 입장을 생각해보는 마음을 갖게 됐다. 내 손이 아프지 않았다면 부모의 보살핌을 받고 편하게 자란 아이들이 집안일이란 것을 해 볼 마음을 가졌을까.

고작 작은 낙타 등 같은 혹일 뿐인데 참으로 기특하지 않은가. 작은 것이지만 그 안에는 가족을 사랑하는 커다란 마음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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