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동양일보 김영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2019년 5월31일. 이날 대한민국 주요 신문 1면 톱 기사는 헝가리 다뉴브강 유람선 침몰사고 관련 소식이었다. 한국인 관광객 33명이 탑승한 유람선이 침몰해 7명이 구조되고 26명이 사망·실종된 참사다.

그런데 이날 유독 조선일보는 ‘김영철은 노역형, 김혁철은 총살’이라는 기사를 1면 톱 기사로 보도했다. 국내 최대 언론이라고 자부하는 조선일보가 자국민 참사 소식보다 북한 숙청 소식을 크게 다뤘다는 것은 그만큼 뉴스 가치를 뒀다는 얘기다.

조선일보는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통일선전부장에서 해임된 뒤 자강도에서 혁명화 조치(강제노역과 사상교육) 중이고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는 미림비행장에서 처형당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또 대미 실무협상을 맡았던 김성혜 통일선전부 통일정책실장과 제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통역을 맡았던 신혜영 1호 통역관도 정치수용소로 보내졌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제1부부장에겐 근신처분이 내려졌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가 오보 논란에 휩싸였다. 김영철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함께 공연 관람, 대집단체조 ‘인민의 나라’ 개막 공연을 관람하는 장면이 북한 매체들을 통해 잇따라 공개됐기 때문이다. 이 사진은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로 혁명화 조치를 당해 강제 노역을 하고 있다는 김 부위원장이 정치적으로 건재하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다. 또 근신 처분을 받았다는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공식활동 재개 소식도 나왔다. 대집단체조 행사에서 김 제1부부장이 리설주 여사 바로 오른편에 앉아 있어 오히려 정치적 서열이 더 높아진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낳았다.

북한과 관련한 조선일보의 오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조선일보가 2013년 포르노 비디오 판매 등에 연루돼 공개처형 당했다고 보도한 현송월 삼지현관현악단 단장은 작년 평창동계올림픽 때 방남헤 보란 듯이 공연을 기획했다.

조선일보의 오보 흑역사중 으뜸은 ‘김일성 총 맞아 피살’이라는 제목의 기사다. 조선일보는 1986년 11월17일 “북괴 김일성이 총에 맞아 피살되었거나 심각한 사고를 당했다”는 내용의 ‘호외’를 발행해 배포했다. 하지만 김일성이 같은 날 오전 10시 몽골 공산당서기장을 맞이하기 위해 평양순안공항에 모습을 나타냈다는 외신 보도로 망신살이 뻗쳤다.

북한 정권 관련 기사는 폐쇄성으로 인해 사실 확인이 어려워 오보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남북 화해협력과 평화에 걸림돌이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아니면 말고 식’의 보도는 남북관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근의 조선일보 보도를 보면 진정 한반도에 평화를 원하는지, 전쟁을 원하는지 헷갈리게 한다. 백번 양보해 숙청설 같은 보도야 믿었던 소식통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아 본의 아니게 오보가 됐다고 치자.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발표 소식은 차원이 다르다. 트럼프는 지난 2월6일 미 의회에서 2차 북미정상회담을 같은 달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북미정상회담은 한반도, 나아가 세계 평화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전 세계가 주목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트럼프의 미 의회 연설 사진이 신문 1면 주요 사진으로 다뤄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트럼프 얼굴 사진만 싣고 자사 행사 관련 사진 두장을 크게 다뤘다. 그것만 봐서는 조선일보가 북미회담을 원치 않는다는 오해를 받기 십상이었다.

앞서 조선일보는 지난 1월24일자 1면에도 전날 헌정 사상 처음으로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은 사법농단 정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법원 출석 사진을 싣지 않았다. 대신 무소속 손혜원 국회의원의 전남 목포 적산가옥 기자회견 장면을 대문짝만하게 게재했다. 조선일보는 한때 ‘신문의 교과서’로 불릴 정도의 위치에 있었다. 그런 조선일보가 전 대법원장 사진을 1면이 아닌 12면에 싣고 1면에 손 의원 사진을 게재한 것은 분명 어떤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국내·외적으로 매우 중요하고 민감한 사안에 대해 보인 조선일보의 보도 태도는 국내 최대 신문답지 않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언론이 정파적 성향을 띠고 보도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정권이 마음에 안 들어 마구 비판하더라도 국익 앞이라면 좀 더 심사숙고해 줬으면 한다. “조선일보는 한반도에 평화가 오는 것을 원치 않는 것 같다”라는 소리를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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