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희 논설위원/한국선비정신계승회 회장

강준희

(동양일보)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리고 산천초목도 벌벌 떨게 해 오금을 제대로 못 펴던 저 서슬 푸른 5공 시절. 진 모씨가 국무총리라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에 발탁되자 성은이 망극하여 자기 뜻을 밝히는 취임사에서 “우리는 지금 요순시대 이래 최고의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다”라고 말해 국민으로부터 빈축을 산 일이 있었다. 도대체 5공이 어떤 시절이었는데 하늘 무섭게 그런 씨날에도 안 먹히는 소리를 할 수 있었는지 곱씹어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만일 그의 망언을 요,순 두 임금님이 지하에서 아신다면 “이런 천하에 고이한....”하고 기절초풍 까무라칠 것이다.

요,순 시대가 대체 어떤 시대인가. 해마다 시화연풍(時和年豐)하고 국태민안(國泰民安)해서 들에서는 농부들의 격양가(擊壤歌) 소리 드높았고 거리에는 백성들이 강구연월(康衢煙月) 춤을 추었다.

어찌 요순시대 뿐이던가. 우(禹)와 탕(湯), 문무(文武)와 주공(周公) 때도 예외가 아니어서 세상은 국태민안 했고 시절은 강구연월 했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국태민안과 태평성대를 가리켜 요,순,우,탕,문무,주공이라 한다. 이런 태평성대를 인권이 송두리째 유린되던 저 악명 높은 5공의 독재정치를 ‘요순 이래 최고의 태평성대’로 규정했으니 상분지도(嘗糞之徒)와 대간사충(大姦似忠)의 극치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상분지도와 대간사충은 이것 말고도 또 있었는데 이게 전모(全某) 대통령 후보가 대통령으로 입후보했을 때 이 나라 시단의 원로 대 시인 서 모 씨는 “전두환 대통령 후보의 웃음은 단군할아버지가 봐도 좋아하실 웃음이다”라며 기도 차지 않은 아첨을 해 많은 국민을 실망시켰다. 우리는 여기서 이 두 아첨을 보면서 ‘역린(逆鱗)’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역린이란 임금의 분노를 말하는 것으로 본래의 뜻은 용의 턱 아래 거슬러 난 비늘을 말함이다. 용은 이 역린을 건드리기만 하면 성을 내서 건드린 사람을 죽이기 때문에 임금의 노여움을 사는 것을 ‘역린에 부산친다’고 한다.

지금 우리에게 처한 상황은 난국이라 하고 있다. 정치 난국 경제 난국 사회 난국 등등. 그래서 이를 사람들은 총체적 난국으로 보고 그 처방을 찾느라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난국은 다윗의 힘과 솔로몬의 지혜로도 풀기 어려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래서 산지사방에서 아우성이다. 어쩔 것인가.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하는 항우(項羽)의 힘과 풍운조화를 마음대로 부려 환풍호우(渙風呼雨) 하는 제갈량의 신묘한 출사표라도 내놓는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는 한 방법은 한 가지 ‘역린’뿐이다. 그런데 아무도 역린하는 이가 없다. 설령 역린하는 이가 있다손 쳐도 헛말 귀양 보내는 격이다. 이제 죽은 자식 뭣 만져보기지만 당초 통치자나 정부가 국민한테 약속한 공약을 제대로 이행했더라면 이런 정치 난국 경제 난국 실업 난국 사회 난국을 비롯해 비리, 부조리, 폭력, 정경유착, 투기, 주색잡기 같은 추악한 현상은 횡행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문득 생각나 인용하거니와 중국의 소설가 ‘가평요’가 쓴 ‘폐도(廢都)’의 한 대목을 보자.

‘공무원이란 자들은 저 높은 곳에서 호의호식하고요

정경유착 모리배들은 아무리 투기를 해도 뒤탈이 없고요

경영자란 자들은 주색잡기를 해도 회삿돈으로 긁고요

점포 상가 세놓은 자들은 누워서 임대료 착착 거두고요

브로커란 자들은 원고 피고 막론하고 모두 등쳐먹고요

의사란 자들은 앞뒤 호주머니에 돈 봉투 빡빡하고요

연예인들이란 자들은 엉덩짝만 흔들어도 돈다발 굴러오고요

광고 선전하는 자들은 이틀이 멀다고 음식대접 받고요

학교 선생님이란 자들은 하루 세끼 연명하기 바쁘고요

일반 백성들은 뼈 빠지게 일하라 하면서 나라 주인이라 떠든대요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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