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동양일보 김영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에 대해 검찰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해외 순방 도중 외교 결례를 무릅쓰면서까지 급거 귀국, 입장 표명한 것이 이 사태의 정점이다. 수사권이 조정되면 경찰이 검찰의 통제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수사해 국민에게 피해가 간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다.

이런 와중에 송인택 울산지방검찰청검사장이 지난달 26일 A4 용지 14장 분량의 검찰개혁에 관한 장문의 글을 국회의원 300명 전원에게 보냈다. 현직 검사장이 실명을 걸고 구구절절 자신의 입장을 밝힌 것도 이례적이지만 국회의원 전원에게 보냈다는 것도 그 용기와 소신을 높이 살만하다.

송 검사장이 작성한 ‘국민의 대표에게 드리는 검찰개혁 건의문’을 놓고 찬반 논란이 이는 것은 당연하다. 한쪽은 상대방을 못 믿겠으니 지금처럼 계속 틀어쥐고 지휘해야 한다는 거고 다른 한쪽은 우리도 컸으니 이젠 독립 좀 해야겠다고 맞서는 꼴이다. 이권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해결될 수 없는 밥 그릇 싸움이 가관이다.

송 검사장은 형사소송법 개정안 등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나름 자신의 검찰 개혁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송 검사장이 외치는 개혁안이 일반 국민들의 피부에 썩 와 닿지 않는 것 같다.

검·경수사권 조정 문제가 불거진 배경은 ‘정치검찰’, ‘도 넘은 제 식구 감싸기’ 등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검찰이 보인 무소불위의 행태와도 무관치 않다. 한 번쯤 검찰 수사망에 걸려들었던 국민들이 검·경수사권 조정에 그나마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뭔지를 헤아려야 한다.

송 검사장이 내놓은 검찰 개혁안의 적절성을 떠나 자신들의 잘못은 모른 채, 아니 숨긴 채 자정의 노력은 보이지 않고 정치 논리로 윗선에만 책임을 돌리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대전 유성 출신인 송 검사장은 2015년 12월 청주지검장으로 부임했다. 취임 일성은 언론사의 보조금 횡령과 사이비 기자 척결이었다. 그중 신문사를 상대로 한 수사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누구든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되는 보조금을 사익으로 챙기거나 공갈 협박해 금품을 갈취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죗값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수사 방식이 문제였다. 혐의를 특정해 핀셋으로 콕 찍어 수사한 게 아니라 ‘아니면 말고 식’의 투망식 수사가 동원됐다. 일선 행정기관과 건설업체들에게 5년치(2011~2015년) 보조금 정산 내역과 광고집행 내역 등을 요구한 뒤 하나하나 걸러내는 식이었다.

이런 수사는 무소불위의 막강한 검찰 권한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 검찰은 보도자료에 “모 일간지의 경우 이번의 검찰수사를 비판하기도 하였지만(중략)··· 특히 모 언론사는 자사 신문에 사죄광고를 게재하여 불법행위 근절을 다짐했다”고 적시했다. 칼럼을 통해 검찰 수사 방법을 비판한 그 신문은 액수가 2040만원으로 가장 적음에도 수사검사가 공판에 직접 참여하는 등 괘씸죄 표적이 됐다.송 검사장은 2017년 전주지검장으로 가서도 똑같은 방법으로 전주지역 언론사들을 사법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듭 말하지만 위법행위에 대한 정당한 검찰 수사를 두고 뭐라 하는 게 아니다. 막강한 힘을 이용해 ‘털어 먼지 안나냐’는 식으로 수사한다면 수사 주체를 포함해 먼지 안 날 사람이 얼마나 될지 묻고 싶다.

송 검사장은 경찰이 수사권 발동에 아무런 제약없이 언제든지 수사를 개시하고 계좌와 통신과 주거를 마음껏 뒤지고 뭔가를 찾을 때 까지 몇 년이라도 계속 수사하고 증거가 없이도 기소의견으로 송치하거나 아니면 언제든지 덮어버려도 누구하나 책임지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그것은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라고 주장했다. 맞는 말이다. 압수수색한 지 2년이 넘도록 수사를 질질 끌다가 송치하는 경찰의 수사력이 의심받는 상황에서 이같은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한 명의 억울한 사람도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에 송 검사장은 얼마나 철저하고 자신이 있는 지 궁금하다.

검·경수사권 조정 문제는 이해집단 간 치열한 논쟁과 토론을 통해 해결하면 된다. 국민들은 경찰이든, 검찰이든 그들로 인해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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