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용 전 금강유역환경청장

이경용 전 금강유역환경청장

(동양일보) 올초 통계청은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0.98명으로 여성이 가임기간(15∼49세)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가 한 명도 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1.68명)에도 훨씬 못 미치는 압도적 꼴찌다. 보통 인구유지에 필요한 합계출산율을 2.1명으로 보는데, 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니 가히 ‘저출산 쇼크’라 할만하다.

그런데 국회 입법조사처가 최근 펴낸 저출산 관련 보고서를 보면, 소득 격차에 따른 혼인·출산율 차이가 있다고 한다. 2007∼2018년 국민건강보험료를 기준으로 분만 건수가 소득이 낮을수록 떨어졌다는 것이다. 소득 1분위(최하위 10%)에서 분만 건수가 7.67%에서 4.99%로, 3분위에서 7.70%에서 5.56%로 떨어졌다. 반면에 소득이 높을수록 분만 건수가 증가하여 8분위에선 12.41%에서 14.12%로, 9분위에서 7.81%에서 9.72%로, 10분위에선 4.96%에서 5.33%로 올랐다. 출산율도 소득 수준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섰다.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겨우 67달러에 불과했고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웬만한 아프리카 국가들보다 가난했다. 그런 우리나라가 1994년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돌파한 이후 지난해 3만 달러를 넘어 명실상부한 경제선진국 대열에 올랐다. 이로써 한국은 인구가 5,000만 명 이상 이면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는 넘는 ‘30-50클럽’의 일원이 되었다. 이런 나라가 세계에 7개 국가뿐이라고 한다.

마땅히 축하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별로 감흥이 없다. 국가 전체의 소득은 늘어났을지 몰라도 국민 개개인의 주머니가 풍족해졌다고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불평등데이터베이스(WID)에 따르면 우리나라 20세 이상 인구 중 소득 상위 10%에 속하는 계층의 소득 집중도는 2016년 기준 43.3%로 1996년 35%에 비해 8.3% 상승했다. 우리나라 상위 1%의 소득 집중도도 1996년 7.8%에서 2016년 12.2%로 높아졌다. 소득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 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승자가 거의 모든 것을 가져가는 ‘승자독식’의 사회가 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원래부터 소득 불평등이 이렇게 참담할 만큼 심각했던 것은 아니다. 1995년만 해도 우리나라는 소득 상위 10%의 소득 점유율이 32%에 불과했다. 복지의 선진국인 북유럽 국가들의 28%에 비하여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다 1997년 외환위기를 타개하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로 무장한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의 우리나라 시장과 경제에 대한 자유화 요구를 제도화 하면서 승자독식 체제가 구조화 되었다. 당시 상황을 보았을 때, 외환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는 하지만 신자유주의 체제가 진보정권에 의해 고착화 되었다는 것도 역사적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승자독식사회에서 구성원의 삶은 고단하고 황폐하다. 우리나라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한다. 같이 가난한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남이 나보다 더 가지는 것은 참지 못한다. 이러한 사회 환경 속에서 갖지 못한 이들은 가진 이들을 증오하고, 가진 이들은 갖지 못한 이들을 경계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도시와 농촌, 부자와 가난한 자 등 숱한 사회적 갈등의 근저에는 승자독식의 경쟁원리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직장을 잡을 때 대기업을 고집하는 이유도 승자독식사회가 낳은 병폐이다. 첫 직장이 어디냐에 따라 인생 전체가 바뀐다고 생각한다. 대기업이어야 많은 걸 배울 수 있고, 나중에 직장을 옮겨도 좋은 직장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전도유망한 벤처기업에서 일했거나 중소기업에서 실력을 증명했다고 해도, 이직 땐 대기업 출신보다 불리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죽기 살기로 대기업만 고집한다. 대기업 예찬론은 명문대 예찬론과 상통한다. 명문대에 들어가느냐 마느냐에 따라 장래가 결정된다고 보니 대학입시에 올인 하게 된다. 자식들을 ‘승자의 반열’ 위에 올리기 위해 부모들은 엄청나 희생과 출혈을 감수한다.

그러나 승자독식사회는 지속 가능할 수 없다.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면 언제가 폭발할 것이고 사회 해체로 이어질 수 있다. 자유시장경제에서 경쟁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그 경쟁은 공정한 경쟁이어야 한다. 나는 공정한 경쟁은 기회의 균등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설령 패자가 되더라도 다시 회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워져야 하고,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촘촘한 사회적 안전망으로 보호되어야 한다. 이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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