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 논설위원 / 시인

나기황 논설위원 / 시인

(동양일보) 뜬눈으로 밤을 새운 안중근 의사는 새벽 여명이 걷혀가는 하얼빈 역을 바라보고 있다.

얼마가 지났을까. 십자성호를 긋고 외투 주머니 속 브라우닝 8연발 권총의 무게를 가늠하며 숙소를 나선다. 이윽고 철커덩, 덜컹, 기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선다.

1909년 10월 26일, 9시 30분, ‘누런 얼굴에 흰 수염을 가진, 한 조그마한 늙은이-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방아쇠를 당김으로써 하얼빈역은 “코레아 우라!-대한만세”를 외친 강렬한 역사적 현장이 됐다.

2014년, 일본의 항의와 정치적 압력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는 고증을 바탕으로 하얼빈역 구내 대리석 바닥에 안 의사가 서 있던 지점에는 총을 겨눈 방향으로 세모꼴 표시와 이등박문(伊藤博文)이 쓰러진 지점에 네모표시를 새겼다. 역사(驛舍)가 바라다보이는 왼쪽으로 안 의사가 거사를 성공시킨 그 자리에 안중근 기념관을 세움으로써 역사적 진실을 택한 것이다.

비록 이국땅이지만 안 의사의 핏빛 애국혼이 110년 세월 동안 잊히어지지 않는 항일운동의 표지석 역할을 한 것이다.

하얼빈. ‘그물을 말리다.’는 뜻이라 한다. 중국 송화강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흑룡강성의 성도(省都)로서 러시아풍과 동방의 문화가 용해된 중국 내 가장 중국답지 않은 곳이 하얼빈이다. 흑백사진의 이미지로만 각인 돼 있는 하얼빈역의 모습도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두 번째로 찾은 ‘731부대’도 하얼빈을 역사의 현장으로 붙잡아 두는 곳이다.

‘731부대’ 역시 이곳 하얼빈에 있던 일제 관동군 산하 ‘세균전’ 부대이다. 1936년에서 1945년 여름까지 전쟁포로 등 3,000여 명을 대상으로 갖가지 세균실험과 약물실험 등을 자행했다.

전쟁은 인간이 인간이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가장 잔혹한 게임이다. 731부대는 세균전을 위해 세균학 박사 이시이 시로(石井)중장이 주창해서 만든 부대다. ‘731부대’에는 바이러스·곤충·동상·페스트·콜레라 등 생물학 무기를 연구하는 17개 연구반이 있었고, 각각의 연구반마다 ‘마루타’라고 하는 생체실험용 사람들이 있었다. 패전이 임박하자 그들은 만행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150여 명의 살아있는 ‘마루타’까지 모두 없앤 것으로 알려졌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이 격언을 새겨듣지 않는 한 피해자인 한국도, 가해자인 일본도 진정한 선진국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본 행사는 셋째 날에 있었다.

매년 중국 연변에서 주최하는 '포석 조명희 문학제'가 올해로 18회, 이곳 하얼빈에서는 처음으로 열리게 된 것이다.

항일투사이자 민족민중문학의 선구자, 건국훈장 애국장에 빛나는 조명희 선생을 기리는 문학제다.

조선족 학교, 제일중학교를 들어서는 교실 벽면에 눈에 띄는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분초를 다투어 흘린 땀방울에 성공의 희열이 따르리라!“ 고 1학년 학생들의 자체 표어다.

56개의 민족이 섞여 사는, 90%의 한족(漢族)을 제외하면 55개의 소수민족이 모여사는 중국에서 우리말을 갈고 닦아 지켜나가는 일은 또 따른 애국이고 민족의 맥을 이어가는 최소한의 방편이 될 것이다. 중3 학생의 수상소감이 뭉클하게 다가왔다.

”어머니가 조선족 학교에 다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1시간 30분, 학생들에게 짧지 않은 행사시간 내내 자리에 앉아 경청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자세가 퍽 인상적이었다. 학칙과 학습의 과정을 성실히 따르면서도, 당당하고 여유로운 모습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한국 학생들에게서 좀체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부모와 스승, 학생이 혼연일체가 돼서 우리말을 가꾸고 지켜나가는 모습에서 조선족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향수‘를 부르는 합창단의 모습, 북소리 장단으로 ’아리랑‘을 불러준 그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표류하듯 스쳐 지났던 하얼빈의 3박을 채워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