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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 ‘딸들에게 희망을 준’ 이희호 여사
풍향계 / ‘딸들에게 희망을 준’ 이희호 여사
  • 동양일보
  • 승인 2019.06.13 1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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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영 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유 영 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동양일보) 아침에 출근복을 입으면서 가슴에 브로치 대신 ‘W’ 이니셜의 배지를 달았다.

여성(Women)의 첫 글자인 ‘W’자에 남녀의 얼굴모습을 조합해서 남녀가 함께 앞으로 전진, 발전하는 모습을 담은 이 배지는 한국여성재단의 로고이다.

배지는 2001년, 그러니까 1999년 창립된 한국여성기금회가 2001년 한국여성재단으로 명칭을 바꾸면서 엠블럼을 공모해 만든 것으로, 재단행사 때 받게 된 것이다.

갑자기 배지를 달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여성계 몇 명과 10일 별세한 고(故) 이희호 여사를 조문하자고 했고, 조문을 할 때 ‘딸들에게 희망을 주신 당신’을 기억하고 그 뜻을 잊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을 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이희호 여사는 대통령의 영부인으로서의 조용하고 우아한 조력의 역할보다, 선구적인 여성지도자로서 이 나라 여성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 개인적인 업적을 추앙받아야 한다. 그동안 청와대를 거친 여러 영부인들도 나름 소외계층이나 여성들을 위해 일을 하고 봉사를 하였지만, 이 분처럼 온몸으로 그리고 투쟁적으로 여성을 위해 여성의 입장으로 여성의 지위를 올리고자 노력한 영부인은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 분의 이런 활동은 많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오늘날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번지는 성평등 변혁의 물결은 이 분이 일찌감치 뿌린 씨앗에서 싹이 튼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젊은 시절부터 대한여자청년단, 여성문제연구원 등을 창설해 활동하고, 특히 여성 문제와 함께 아이들과 노인, 장애인 등 소외된 사람들이 겪는 빈곤과 인권 문제는 항상 그의 관심과 활동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왔다.

영부인이 된 후에는 딸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기금을 모으자고 한국여성기금회와 한국여성재단을 만들었고, 무엇보다도 여성들을 위한 법제정에 발벗고 나섰다. 1989년 이뤄진 가족법 개정과 1999년 남녀차별금지법 제정은 여성과 남성의 평등을 이끈 ‘획기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법 개정 전 우리 헌법엔 남녀 차별적인 제도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남편 쪽은 8촌까지 친족으로 인정하면서 아내 쪽은 4촌까지만 인정하고, 남편의 혼외자 등은 자유롭게 자식으로 들일 수 있으면서 아내는 그렇지 못했다. 또 재산권 행사나 상속에서도 남편과 아들에게만 유리한 구조였다. 그러나 이 법의 개정으로 이러한 차별적인 조항이 사라졌다. 아울러 호주제 폐지가 이뤄지는 첫 걸음이 됐다.

1999년 제정된 남녀차별금지법은 비로소 한국도 선진국처럼 남녀차별금지법이 있다고 어깨를 펼 수 있는 획기적인 법이었다.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의 남녀차별을 금지한다”는 이 법이 탄생되기까지에는 이희호 여사의 강력한 지지와 관심이 큰 역할을 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여성가족부의 전신인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가 만들어지도록 기여하고, 이 위원회를 중심으로 노력해 마침내 난항 끝에 법이 통과된 것은 지금 생각해도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있다. 이 모든 일 뒤에는 이희호라는 탁월한 여성운동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의 신념은 정치인 김대중의 여성관을 바꾸는 데도 큰 기여를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살아생전 “내가 나름대로 페미니스트적인 관점과 행동을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조언 덕이었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결혼 직후 대문 옆에 ‘이희호’·‘김대중’ 문패를 나란히 단 것도 아내에 대한 존중때문이라고 했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과 아동 인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평생을 바친 여성 지도자. 그가 북미연합 ‘1984년도 인권상’과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이 해의 탁월한 여성상’을 비롯하여 많은 상을 수상하고, 후배들에게 ‘1세대 페미니스트’라고 불리는 것은 여성을 위해 평생 헌신한 그에 대한 당연한 찬사이다.

이제 향년 97세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영원한 동반자 DJ를 찾아 먼 여행을 떠난 이희호 여사. 환하고 온화하게 웃는 그의 영정 앞에 존경의 마음을 담아 한 송이 흰 국화를 올린다. “딸들에게 희망을 주신 이희호 여사님, 이제 편안히 쉬십시오.”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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