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석 충북의사회 회장

안치석 충북도의사회장
안치석 충북도의사회장

 

(동양일보) 중국은 CCTV의 나라다. 자료에 따르면 공공장소와 거리에 설치된 감시카메라가 1억7600만대에 달한다. 여기에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술을 접목해 중국 전역에 ‘텐왕(天網, 하늘의 그물)’이라는 감시망을 구축했다. 중국 공안부는 CCTV를 통해 국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니터한다. 톈왕은 ‘빅 브라더’를 묘사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속 ‘텔레스크린’을 연상하게 한다. 소설 ‘1984’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자유롭게 생각하지 못하고, 주어진 공간 안에서 예정된 행동만 하며 살아가야 한다. 소설은 개인의 감정과 자유가 통제되는 전체주의 국가의 암울한 모습을 보여준다.

요즘 병의원 수술실 CCTV 설치를 두고 정치권과 환자단체의 공세가 거칠다. 신생아 낙상사고 은폐, 무면허자 대리수술, 수술실 내 비윤리적인 행위 등을 빌미로 소비자 환자 단체가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에 화답하듯 국회의원은 수술실 CCTV 촬영을 의무화하는 의료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지난달 21일 재 발의했다.

이들은 환자와 보호자의 알권리를 충족하고 의료사고의 증거를 확보하며 불법 의료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수술실 CCTV 촬영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한다. 감시용이 아니라 예방용이라고 둘러대며 유령수술과 성희롱을 없애기 위해 수술실 CCTV가 필요하다고 한다. 의사에 대한 분노와 불신의 뿌리가 생각보다 깊다.

대다수의 의사들은 수술실 CCTV 설치에 반대한다. 충청북도의사회는 지난 14일 성명을 통해 "수술실 CCTV 설치를 위한 의료법 개정안은 프라이버시와 인권을 침해한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대한의사협회도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해 의료인을 압박하고 감시하는 것이 환자의 인권을 위한 것이라면, 오히려 공공기관, 정부기관, 국회 등의 사무실에 CCTV 설치가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술은 보호자에 대한 추가 설명과 동의가 필요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의사와 환자 간의 사적 계약에 의한 진료 행위이다. 수술실 역시 의사와 환자가 상호 신뢰를 전제로 한 사적 치료 공간이다.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면 수술을 받는 환자의 수술 부위는 물론 민감한 부위까지 모두 노출되고 공개된다. 프라이버시 침해와 인권 침해적 요소가 너무 많다.

감시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감시는 분명 안전과 편리를 제공하지만 아울러 인권을 침해하기도 한다. ‘로빈 터지’는 그의 책 ‘감시사회 안전장치인가 통제 도구인가’에서 첨단 감시 기술과 그것을 통제하려는 국가, 그로부터 이득을 얻으려는 시장, 감시에 길들여진 우리의 안이한 일상을 깊이 지적했다.

우리 모두는 인간답게 일하며 인간답게 살고 싶어 한다. 수술실 의사가 인간답게 일한다는 말에는 감시 없는 상태에서 의학적으로 통제되는 자율적인 의료행위가 먼저 고려돼야 한다. 환자의 안전과 빠른 회복을 우선한다면 수술실 의사에게 감시체계를 강요할 것이 아니라 수술실 환자 안전장치를 더 도입하거나 적정 의료인력과 근무시간을 보장하는 일이 순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술실에는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많은 의사가 땀을 흘리고 있다. 이러한 힘은 의사로서 신념과 사명감, 그리고 의사에 대한 존중과 신뢰로 부터 나온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일은 말아야 한다. 선진국 어디에도 의료인을 감시하려고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는 나라는 없다. 인권과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부에서 수술실 CCTV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감이다.

“윈스턴 스미스는 오늘도 빅 브라더의 거대한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가 오랫동안 기다렸던 총알이 그의 머리에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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