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희 논설위원/한국선비정신계승회 회장

강준희 논설위원/한국선비정신계승회 회장

(동양일보) 지난날의 지사(志士)나 선비들은 이름을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겨 청명(淸名), 즉 깨끗한 이름을 처세훈(處世訓)의 최고 가치로 알았다.

그러니 이름이 욕되거나 더럽혀지면 자신은 물론 부모·형제를 포함한 가문이 망하는 것으로 단정, 자결 또는 자진으로 속죄를 했다.

뿐만 아니라 이름이 더럽혀짐은 곧 임금을 속인 기군망상(欺君罔上)과 나라에 누를 까친 대죄인으로 자처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찌 지사나 선비뿐이겠는가.

여항 저자의 한낱 이름 없는 필부(匹夫)나 필부(匹婦)도 이름이 욕되고 더럽혀지면 자결로써 속죄한 게 비일비재했다.

그러므로 지사나 선비 또는 관원에 있어서의 깨끗한 이름은 하늘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 만큼 이들에 있어 이름의 폄훼(貶毁)는 죽어 마땅한 일이었다.

우리는 이름을 깨끗이 해 죽백청사에 길이 남을 아름다운 이름을 알고 있고, 이름을 더럽혀 천만세에 오명을 남겨 타기(唾棄)할 이름도 알고 있다.

전자는 예컨대 여말의 삼은(三隱)과 조선조의 사육신(死六臣), 삼학사(三學士) 등이요, 후자는 이 나라 대한을 일본에 팔아넘긴 을사오적(乙巳五賊)의 매국노들이다.

한 번 더럽혀진 이름은 지우려야 지울 수가 없다.

몸의 때(垢)는 목욕으로 지울 수 있고, 옷의 때는 세탁으로 지울 수 있지만 이름의 때는 목욕과 세탁으로도 지울 수가 없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통치권자는 깨끗한 통치의 청권(淸權)이 돼야 하고 나라의 녹을 먹는 공직자는 깨끗한 공인으로써의 청관(淸官)이 돼야 한다.

부자는 권력과 밀착해 정경유착으로 돈을 벌 것이 아니라 자기 노력으로 깨끗이 돈을 버는 청부(淸富)가 돼야 하고 학자나 문필가는 사문난적(斯文亂賊)하지 않고 곡학아세(曲學阿世)하지 않는 깨끗한 이름의 청명(淸名)이 돼야 한다.

그런데 요즘 세상 돼 돌아가는 꼬락서니는 대체 어떤가?

나라를 좌지우지하며 내로라하던 지도자들은 이름 더럽히기에 현안이 된 듯 오명투성이다.

그리고서도 똥 뀐 놈이 성내듯 되레 큰소리다.

참회와 반성은커녕 되레 재수 없어 걸려들었다는 배포다.

적반하장도 이쯤 되면 유만부동이다.

하기야 이렇듯 뻔뻔한 사람들이니 그 많은 재산을 불법 탈법으로 축재하고도 깨끗한 척 했겠지.

송사(宋史)에서 여회(呂誨)는 본시 크게 간사한 사람은 그 아첨하는 수단이 매우 교묘하므로 흡사 크게 충성된 사람처럼 보이다 했다.

이를 역사는 대간사충(大奸似忠)이라 하는데, 깨끗한 체하며 재산을 불법으로 끌어 모은 사람들이 입만 열면 애국애족과 국가민족을 독판 찾는 사람들이다.

강아지가 웃을 노릇이다.

이들은 모두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같은 사람이요, 양의 탈을 쓰고 개고기를 파는 양두구육이요, 깨끗한 체 이름을 팔아 더럽게 치부한 우리의 공적(公敵)들이다.

여기서 우리는 저 조선조 때 수양대군(세조)을 도와 영의정을 몇 번씩 지내며 온갖 영화를 다 누렸던 한명회란 인물을 생각지 않을 수가 없다.

당대의 최고 세도가였던 그는 지금의 한강변 압구정에 압구정(鴨鷗亭)이라는 호화정자를 세우고 “젊어서는 나라를 위해 충성을 하고, 늙어서는 자연에 누워 편안한 삶을 누린다”는 청춘부사직(靑春扶社稷) 백수와강호(白首臥江湖)의 시판을 걸어놓고 위세를 뽐냈다.

때에 야시(野詩)의 반항아로 유명한 김시습이 이를 보다 못해 도울 부(扶)자 대신 망할 망(亡)자를 쓰고 누을 와(臥)자 대신 더러울 오(汚)자를 써넣어 “젊어서는 나라를 망치더니, 늙어서는 자연을 더럽히는구나”하고 질타했다.

깨끗하게 사는 것, 이름을 더럽히지 않고 사는 것! 이것이 가장 잘사는 것이건만 이름을 더럽히고 사는 위인들은 이를 모른다.

이들은 돈과 권세가 제일이요 목적이니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참으로 불쌍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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