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김영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동양일보 김영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라는 옛말이 있다. 망아지는 말의 고장인 제주도에서 길러야 하고 사람은 어릴 때부터 서울로 보내어 공부를 시켜야 잘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엔 거꾸로 사람은 제주도로, 말은 서울로 보내야 한다는 역설적 주장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그만큼 제주의 풍광과 자연의 멋이 육지사람들을 홀리고 있다. ‘제주이민’이라는 말까지 생겼을 정도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서울은 서울이다. 대한민국의 인구와 돈, 권력이 집중돼 있는 서울을 빼고 얘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특히 교육이 집중된 서울 파워는 더 세다. 사람은 서울로 보내야 한다는 속담을 뒷받침해 주는 요인 중 하나다.

이시종 충북지사와 김병우 충북도교육감이 소위 ‘명문고’ 육성을 놓고 갑론을박한 것도 바로 ‘사람은 서울로’라는 대명제 때문이다.

예산 확보를 위해 시도 때도 없이 중앙부처를 방문하는 이 지사는 세월이 갈수록 두터운 벽을 실감한다고 토로한다. 과거엔 부처 주요 보직에 충북 출신이 있어 ‘부탁’하기가 수월했는데 근래들어선 한계를 절감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라고 한다. 충북 출신 인물이 부족한 탓이다.

인물을 키워 서울로 보내 그 인물이 고향을 위해 도움을 준다면 금상첨화다. 서울에 모든 게 몰려 있고 중앙집권적 여건에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고 서울만 좋고, 서울만 중요하다는 건 아니다. 지방이 있어야 서울이 있고, 지방이 살아야 서울도 산다는 대전제가 수반돼야 한다. 지방의 설 자리가 좁아지면 서울만 비대해져 지방은 점점 볼품 없어질 게 뻔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

외국에 나가 보면 (우리가 보기에) 보잘 것 없는 것 같은데 관광코스에 집어넣고 그걸 본 사람들은 감탄사를 연발하는 경우를 본다. 귀국한 그들은 우리 것을 거들떠보지도 않으려 한다. 남의 떡이 커 보여서만은 아닐 것이다. 은근히 우리 마음속에 우리 것은 하잘것없다는 선입견, 편견이 자리잡고 있어서인지 모르겠다.

비록 작고 부족하더라도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발전이 없다.

IMF를 거치면서 청주에서도 지역에 기반을 둔 건설업체들이 상당수 도산했다. 주택업체 상황은 더 심각해 현재 서너군데 정도만 살아남아 활동을 하고 있다.

과거엔 서울의 대기업과 지방업체의 기술력 차이가 커 한눈에 봐도 아파트 품질을 분간할 수 있었다. 고층아파트도 대기업만이 지을 수 있었고 그 덕에 시민들은 주거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지방업체들은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더 공을 들여 소비자들에게 다가갔다. 브랜드 면에서 인지도가 떨어지는 것을 품질로 만회하려고 부단한 노력을 했다. ‘지방업체가 별 수 있어?“라는 비아냥을 듣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지방건설업체들이 지은 아파트 품질은 이제 대기업에 뒤지지 않을 만큼 수준이 향상됐다. 그럼에도 대기업 브랜드가 아니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복창 터질 일이다.

대기업이 건설해 작년에 입주한 청주의 한 아파트는 부실투성이다. 한 달여 전 적은 비에도 주차장에 물이 차질 않나, 수돗물을 동시에 틀면 아예 물이 안 나오질 않나.. 하자가 숱하지만 주민들은 ’쉬쉬‘하고 있다. 집값 떨어질까 봐 하소연도 못하고 속앓이만 하고 있다. 지방업체가 지은 아파트였다면 주민들은 어떻게 나왔을까.

모 아파트에서는 얼마 전 옥상에 설치된 시공사 간판에 전기를 끊어 이름을 지웠다. 지방건설업체여서 집값에 영향을 준다는 일부 주민들의 민원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지방업체가 지은 아파트에 산다는 게 창피해서 일거다.

지방업체가 분양 시공한다는 사실을 알고 입주해 놓고 지방업체 운운하며 트집을 잡고 있으니 어이가 없다. 무조건 대기업 브랜드는 좋고 지방업체 브랜드는 형편없다는 식의 지방 깔보기가 아니라면 이런 비상식적인 작태가 일어날 수 없다.

’사람은 서울로’라지만 지방 없인 서울도 없다. 지역에 살면서 지방업체를 외면하거나 무시하고 대기업만 쫓는 것은 지양해야 할 일이다. 지역 발전은 우리 손에 달려 있다. 그것은 지역을 소중히 여길 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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