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 논설위원, 시인

 

(동양일보) 6월의 끝물에 ’에헴‘하고 불볕더위가 본격적으로 따라붙는 모양새다. 맛뵈기 장마예고까지 올 여름도 순탄치 않을 것 같은 예감이다. 요즘 들어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젊은 사람이나 나이 든 사람이나 왠지 우울하고 신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번아웃신드롬(Burn-out Syndrome)'에 감염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말로 ’소진(消盡)증후군‘, ’탈진증후군‘이라고도 한다. 말하자면 일에 몰두해서 열심히 생활하던 사람이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극도의 피로감을 느껴 무기력증에 빠지는 일종의 탈진상태를 말한다. 2019년 5월 세계보건기구(WHO)총회에서는 ‘번아웃증후군’을 "성공적으로 관리되지 않은 만성적 직장 스트레스"로 정의를 내리고,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은 유예하면서도 관리할 필요가 있음을 분명히 밝혔다. 본래 이 용어는 미국의 심리학자 H. 프로이덴버거가 처음 사용한 심리학 용어로 직장인들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업무 스트레스는 쌓여가고 에너지가 고갈될 때 나타나는 증상이다. 심한 경우 자기 혐오나 직무거부로까지 이른다니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일 년의 반이 접혀가는 6월 말이다. 첨예한 경쟁 속에서 지난 6개월 동안 누적돼 온 피로감이 만만치 않다. 생각하면 우리 사회를 방전상태로 몰고 가고 있는 탈진증후군의 요소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장기간 이어지는 경기불황이 가장 심각한 원인이다. ‘사람 중심의 경제’,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란 용어가 물먹은 솜처럼 무겁게 느껴진다. 체감경기와의 ‘갭(gap)’을 메꿔야 하는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도는 무릎 아래를 맴돈다. 번아웃증후군이 단순히 스트레스로 인한 직장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IMF 외환위기 때 느꼈던 막막하고 먹먹하던 우울감이 우리 사회를 무겁게 덮고 있다는 느낌이다. 휴식은 고사하고 당장 일자리가 없어서 우울하고, 뭘 해도 될 것 같지 않은 자영업자들의 막막함이 무기력한 사회를 만든다. ‘사회적 우울’이 오래가면 ‘사회적 질병’이 된다.



번아웃 증후군을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휴식으로 알려져 있다. 그냥 쉬는 게 아니라 의미 있는 재충전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여행이나 명상, 운동 같은 취미 생활도 탈진증후군 개선에 도움이 된다.

서울대 김난도교수팀이 매년 열 가지 키워드의 머리글자를 조합해서 선보이는 올해의 트렌드는 ‘PIGGY DREAM-모두에게 돼지꿈을!'이다.

그중 ‘A'에 해당하는 키워드는 ’As Being My Life‘다. ’그곳만이 내 세상, 나나랜드‘를 의미한다. ‘나나랜드’는 사회적 관습이나 타인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내가 설정한 기준에 맞춰 세상을 살아가겠다는 뜻을 가진 신조어다. 지난해 유행을 탄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나만의 행복)’이나 ‘워라 밸(work life & balance)'의 확장된 의미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한마디로 개인의 삶을 보장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큰 흐름으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는 얘기다. 너무 개인주의로 쏠리는 것 아니냐는 일부 우려가 있지만, 방전된 자신을 위해 충전의 시간을 갖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다가오는 7월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7월은 달리 생각하면 일요일 외 공휴일이 없는 알짜배기 달이다. 휴식과 힐링의 ’나나랜드‘건설을 하는 데 7월만큼 좋은 달도 없을 것 같다.

계획 없이 흘러가는 대로 한 번 살아보자. 잡다한 모임이나 행사도 접어두자.

휴일만이라도 온전히 자신을 위해 써보자. 그동안 묵혀두었던 책 한 권 꺼내 들자. 책은 읽지 않아도 좋다. 그저 흘러가는 뭉게구름을 따라 ‘일장춘몽‘의 달콤한 낮잠을 즐긴들 어떠리.

장마철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어린 시절 바짓가랑이를 적시며 마냥 즐거웠던 고향 집 앞마당을 그려보는 것도 좋지 않은가.

’폭염‘과 ’장마‘의 7월, ’자등명 자귀의(自燈明 自歸依)-자신을 등불로 삼고 의지하라‘는 부처님 말씀을 새기면서 잊고 지냈던 자신을 위로하는 시간을 갖자.

“7월을 디자인하라”. 탈진할 정도로 바삐, 그리고 열심히 살아온 우리 모두에게 드리는 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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