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정 홍성군청 홍보팀 주무관

이효정 <홍성군청 홍보팀 주무관>

(동양일보) 게임을 좋아하는 내가 한 때 열심히 했던 게임은 시드마이어의 ‘문명’ 시리즈였다. 한 문명의 지도자가 되어 나라를 키우고 세계를 제패해야 승리하는 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원’이었다. 강과 바다를 끼고 있어 생산량이 풍족하면서도 보석과 향신료, 관광자원 같은 특수 자원을 끼고 있는 땅에서 게임을 시작해야 문명의 성장 속도가 빨라져 타 문명보다 쉽고 빠르게 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연히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북유럽 4개국에 다녀온 내가 느낀 것 또한 ‘자원이 가진 힘’이었다. 여름엔 밤 11시까지 해가지지 않고, 겨울엔 낮 3시부터 해가 지는 척박한 땅임에도 자연이 만들어낸 수려한 경관과 이를 찾는 전 세계의 관광객들, 석유와 목재, 철강과 같은 풍부한 천연자원이 주는 부를 바탕으로 생긴 사람들의 여유로운 생활. 자원의 관점에서 보면 북유럽은 ‘금수저’, 우리나라는 ‘흙수저’인 셈이다.

이제는 공기에서마저 미세먼지에 섞인 흙냄새가 나는 ‘흙수저’의 나라에서 온 나는 미세먼지 없는 청량한 하늘과 TV에서만 보던 툰드라 지대, 깎아지를 듯이 높은 절벽으로 이루어진 바위산을 오르내리는 버스를 타고 빙하가 만들어낸 천혜의 관광자원 피요르드를 보며 북유럽이 주는 대자연의 힘에 압도당했다.

어마어마한 대자연만큼이나 놀라운 건 사람들이었다. 빙하와 피요르드를 보존하기 위해 박물관을 세워 연구를 지속하고, 아름다운 구시가지, 사적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며 자연뿐만 아니라 고유의 문화를 지키려는 노력이 인상 깊었다.

우리나라도 타고난 자원은 금수저가 아닐지라도 ‘문화 금수저’로 도약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에게는 전 세계 젊은층을 사로잡고 있는 K-POP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인 한글, 신명나는 전통음악, 아름다운 한복과 전통가옥, 고성이 남아있다.

내가 일하고 있는 홍성에도 천 년의 이름을 가진 ‘홍주’의 역사가 있으며, 가을마다 초가지붕 부스 아래에서 홍주를 지켜낸 한용운, 김좌진 등의 역사인물들을 만날 수 있는 역사인물축제가 열린다. 홍주를 천 년 동안 지켜온 홍주읍성과 그 속에 자리 잡은 고즈넉한 분위기의 안회당, 연꽃이 피어나는 아담한 연못이 있는 여하정은 많은 주민들이 휴식을 위해 찾는 명소이기도 하다.

전통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모여 홍성군만의, 더 나아가 한국의 특색이 담긴 문화 자원이 됐다. 천연자원계의 ‘흙수저’인 우리나라도 역사와 문화에서만큼은 북유럽 못지않은 ‘금수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온 다음날 노르웨이에서 북유럽 최초로 열린 K-POP 콘서트 티켓이 2분 만에 매진됐다고 했다. 언젠가는 북유럽에서 우리나라를 찾아와 우리 것을 보고, 듣고, 체험하며 ‘문화 금수저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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