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영 청주시투자유치과 주무관

정원영 <청주시투자유치과 주무관>

(동양일보) 2년 전, 사교육 열풍에 휩쓸리지 않고 우리 아이들만의 특색 있는 유년 추억을 만들어줘야겠다는 고민에서 다섯 살, 세 살 두 자매의 전국 책방 투어 프로젝트는 시작됐다. '동문서답'. 동쪽을 물으니 서쪽을 대답하는 아이들의 생각을 어른들의 논리로만 이해하려 하지 않고 그 신선한 상상력을 응원하자는 의미를 담아 이름까지 정했다.

첫 목적지는 원주의 '패랭이 그림책 버스'였다. 아이들에게 한껏 기대를 불어 넣으며 이른 아침을 깨워 찾아갔지만, 하필 휴관이었다. 익숙한 그림책 주인공들이 그려져 있는 그림책 버스 앞에서 사진 한 컷으로 아쉬움을 달래며 돌아서려는데 박경리 문학공원이 거기 있었다. 박경리 선생님의 생가 옆 작은 기념관과 공원에서 한국 문학의 한 획을 그은 그의 숨결을 느끼며, 꽤 의미 있는 출발이라 위안 삼았다.

처음의 실수를 만회하고자 홈페이지를 몇 번이고 들락날락하며, 가기도 전에 매료돼버린 두 번째 목적지는 부산의 인디고 서원이었다. 청소년 인문학 전문서점이 조금 이른 감이 없지 않을까도 했지만, 아빠의 추진력과 엄마의 망설임이 더해져 왕복 여덟 시간이 넘는 책방 여행길에 올랐다. 대한민국 도로가 참 잘 나 있다 싶기는 했지만 청주와 부산은 멀기도 멀었다. 더구나 부산 IC를 통과한 순간부터 복잡한 교통에 어른들은 혹시 길이라도 잃을까 봐 노심초사했다. 바짝 긴장해 학원이 즐비한 골목을 돌고 돌아 드디어 찾은 인디고 서원!

빨강 머리 앤의 초록색 지붕을 모티브로 지었다는 서원으로 가는 여정이 '기쁨의 길'처럼 행복하지만은 않았지만 인디고 서원에 들어서는 순간은 '앤'이 초록색 집에 처음 문을 열고 들어갈 때처럼 설렜다. 1층에서 다섯 살 큰 딸은 비교적 좁은 공간에 알차게 진열된 그림책을 꺼내어 읽었고, 세 살 막둥이는 아빠 무릎에 앉아 책의 문턱을 넘었다. 2~3층에는 학원가 서점이라면 으레 있어야 할 참고서나 문제집 자리를 인문학 책들이 채우고 있었다. 그곳을 찾은 아이들이라면 적어도 주어진 정답만을 찾으며 정작 자신을 잃어가는 오류를 범하지 않고 사회와 소통하며 주체적인 생각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생겼다.

그렇게 시작된 책방 여행은, 통영 '남해의 봄날', 원주 '터득골 북샵', 이천 '오월의 푸른 하늘', 양평 '산책하는 고래', 괴산 '숲속 작은 책방' 등 인터넷 창에 '작은 책방'이란 검색어를 넣으면 나오는 이름난 책방들을 거의 섭렵하고, 청주 '꿈꾸는 책방'까지 스물아홉 번째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큰 딸이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100번째 이야기를 채우는 것을 목표로 시작했는데, 이 속도대로라면 절반을 채우기도 어려울지 모르겠다.

목표와는 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우리 가족은 책방을 찾아 떠나는 여정 이미 소중한 시간을 선물 받고 있다. 먼 길을 마다 않고 달려간 작은 책방들은 설마 이런 곳에 책방이 있을까 싶은 곳에서 오도카니 서서 늘 우리를 반겨줬다. 정겨운 시골집 같은 건물, 그 소박한 문을 열고 들어가면 공간의 크기를 넘어선 엄청난 에너지가 밀려온다. 좋은 책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생생한 기운은 일상에 마비된 뇌에 산소를 제공해주는 듯하고, 생각과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주는 그 에너지를 얻기 위해 돌아오는 길에 다시 떠날 곳을 고민한다.

마침내 우리는 노후엔 '우리의 책방'을 여는 꿈을 꾸기 시작했고, 그동안 동네 작은 책방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큐레이션을 익히고 주인장의 취향이 담긴 맛깔난 책 소개를 읽으면서 조금씩 세부적인 설계도도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다. 기다림으로 일상의 설렘이 돼준 이 여정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걷다 보면 꿈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고, 그 꿈속에서 아이들 마음이 한 뼘씩 자랄 것이다. 누구의 희생도 바라지 않고 모두 제멋대로 즐기며 행복을 찾아가는 책방 여행, 꽃이 지고 나뭇잎이 에메랄드빛을 발하는 눈부신 7월의 달력에는 또 어떤 책방 추억이 펼쳐질까!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