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주 전 중원대 교수

이상주 전 중원대 교수

(동양일보) 피서철이 다가온다. 사람들은 극서(克暑)하기 좋은 곳을 찾는다. 옛사람들중에는 더위도 즐기며 자연의 교훈을 활용한 사람들이 있었다. 산을 보며 산이 주는 교훈을 인지실천했다. “고산앙지 경행행지(高山仰止 景行行止)”다. 물을 보며 물이 주는 교훈을 인지했다. “요산요수(樂山樂水)”다. 꽃을 보며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 權不十年)”을 배웠다. 나무를 보며 「용비어천가」에서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고 꽃 피고 열매를 맺는다”라고 강조했다. 선인들은 자연이 가지고 있는 속성에서 인생을 배우고 문학의 비유법도 창안했다. 자연이 학문과 인생의 스승이었다.

올여름 녹수청산이 어우러진 계곡에 가서 자연의 교훈도 알고 문화도 누리면 금상첨화다. 견문의 차이가 창의력의 차이다. 문화산수(文化山水)인 구곡(九曲)을 알고 즐기자. 구곡은 화양구곡이 한국 최고(最高)의 구곡이며 제일의 문화산수이다. 계곡(溪谷)은 물이 흐르는 자연의 골짜기이다. 구곡은 이 계곡에 구곡이라는 문화를 입혔다. 구곡은 기호지방엔 58개 충북엔 28개가 설정되어있다. 그렇게 된 이유는 본을 잘 보인 사람이 있고 본을 잘 뜬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본을 잘 보인 사람은 율곡 이이(李珥)와 우암 송시열(宋時烈)이다. 이들의 학문과 인품을 숭앙하는 식견(識見)이 있는 사람들은 구곡을 정했다 ‘승기자염지(勝己者厭之)’하지 않고 ‘승기자효지(勝己者效之)’했다. 즉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본받는다.” 온고지신하면 응용창의력이 발휘된다. 안흠(安欽1863~1940)은 대의 이름을 “모현대(慕賢臺)”라고 지었다. 즉 어진 사람을 흠모한다는 뜻이다. 고개의 이름을 정주현(程朱峴)이라 했다. 즉 중국 송나라 때 도학자(道學者)인 정호(程顥)․정이(程頤)형제와 주자(朱子)를 숭상하는 뜻을 담았다. 그는 지금 충북 영동군 매곡면 수원리 일원에 청간정구곡을 정하고 「청간정구곡가(淸澗亭九曲歌)」를 지어, 그 도통(道統)을 계승했다. 이리하여 그는 구곡가 작자의 한 사람으로 유명(留名)했다.

구곡은 문화산수이다. 문화산수인 구곡관광시대가 왔다. 산수유람시대에서 문화관광시대로 진입했다. 산수유람은 아름다운 산수에 놀러가는 것이다. 문화관광은 문화를 알고 즐기며 문화인식을 하고 문화를 계승하고 창조하는 관광이다.

문화가 미래다. 문화를 계승하고 창조하는 민족에게 미래의 문화가 있다. 미래로 지속되지 않는 영광은 과거라는 시간 속으로 사라진다. 온고지신하지 않은 민족과 국가는 쇠퇴한다. 우리에겐 오늘에 되살릴 창의융합적 문화가 있다. 그 하나가 문화산수인 구곡이다.

외람되지만 필자는 ‘문화산수(文化山水)’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하고 그 활용 전망에 대한 글을 지었다. 2007년 7월 20일 충청일보에 게재한 「문화산수를 찾아서」라는 글이다. 요약해본다. “문화산수란 자연산수에 사람이 문화적 요소를 가미한 산수를 말한다. 즉 자연산수에 철학적 사유를 표상화하거나, 서예미를 감상할 수 있는 격조 높은 글씨를 새겨놓은 산수를 말한다. 동양의 2대 산수문화는 팔경(八景)과 구곡(九曲)이다. 이중 문화산수의 정수는 단연 구곡이다. 한국 제일의 문화산수는 충북 괴산군 청천면에 자리잡고 있는 ‘화양구곡’이다. 문화산수의 수준을 평가하는 요목으로 ①산수의 조화미. ②석질과 석색의 우수성. ③문화유산(시서화)의 다양성. ④인물(송시열)의 역사적 영향성. ⑤원활한 교통여건을 들 수 있다. 화양구곡은 5대 요건을 잘 갖추고 있다. 미래의 산수관광의 양상은 ‘문화산수’ 관광시대로 진화할 것이다. 이미 우리 앞에 가까이 와 있다. ‘구곡문화관광특구(九曲文化觀光特區)’와 함께.”

이렇게 필자는 ‘문화산수’라는 용어를 새로 만들고 그 정의에 대해 서술했으며, 향후 ‘문화산수’관광시대로 진화할 것이라 예상했다. 이런 예견은 현실이 되었다. 구곡을 연구하는 학자가 증가했으며, 경상북도는 2012년부터 속리산권구곡문화유산에 대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구곡을 관광자원으로 연구개발하고 있다. 그 하나가 2018~2019년에 걸쳐 문화체육관광부가 수립한 충청유교문화권 광역관광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문화산수 옥화구곡길'조성사업이다. '문화산수 옥화구곡길'은 옥화구경을 중심으로 물길, 들길, 마을길로 이어지는 걷기 길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중국의 주자가 구곡을 창시했지만 우리나라는 이를 온고지신하여 구곡문화의 융창대국(融創大國)이 됐다. 이렇듯 온고지신이 응용창의다. 온고지신은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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