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연기 한국교통대 교수

(동양일보) 전북교육청은 지난 6월 20일 자사고 재지정 평가에서 상산고가 기준 점수 80점에 미달하는 79.61점을 받아 재지정 취소 결정을 내렸다. 교육청은 사회통합전형 대상자 선발 지표와 학생 1인당 교육비 적정성 항목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고 설명하였다. 올해 자사고 재지정 평가 대상 학교는 전국에 걸쳐 24개교에 달하는데 상산고 측에서는 도교육청의 자사고 평가 결과 내용이 형평성, 공정성, 적법성에 크게 어긋나므로 재지정 취소를 전면 거부하며 부당성을 바로 잡기 위해 향후 행정소송 및 가처분 신청 등 법적 대응에 나설 것임을 밝히고 있다.

자립형 사립고에서 시작된 자사고(자율형 사립고)는 정부 지원금 없이 독립된 재정과 자율적인 교과과정으로 운영되는 사립고등학교를 말한다. 많은 이들이 자사고 제도의 시작이 이명박 정부 시절로 알고 있으나 이미 2002학년도에 3개 고교가 자립형 사립고로 지정되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에서는 평준화에 기초한 표준화된 교육에서 수용하지 못하는 다양한 교육 수요를 특별한 학교 설립을 통해 반영하고자 하였다. 초·중등교육법 제61조에서 자사고는 ‘교육제도의 개선과 발전을 위하여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 한시적으로 적용하기로 결정한 학교 및 교육과정 운영 특례학교’로 정하고 있다. 당시에는 지정된 자립형 사립고 숫자가 얼마 되지 않아 사회적으로 크게 논란이 되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고교다양화 300 프로젝트’를 내세웠다. 다양한 교육 수요 반영과 사교육비 절감을 목적으로 한 이 프로젝트의 주요 내용은 기숙형 공립고 150개, 마이스터고 50개, 자율형 사립고 100개를 지정 또는 설립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책의 결과는 특목고·자사고와 일반고가 나뉘어지는 고교 교육의 서열화를 가속화하고 특목고·자사고 입시에 따라 중학생뿐 아니라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까지 사교육 대상을 확대시킨 것이었다.

우리나라 정부 수립 이래로 교육 정책은 평준화 확대와 수월성 교육 강화 사이를 오가고 있는 중이다. 1969년 서울을 시작으로 1971년에 이르러 우리나라 모든 지역에서 중학교 입시가 폐지되었다. 뒤이어 1974년 서울과 부산에서 고등학교 평준화 제도가 적용되고 그 후 평준화가 확대되었다. 보통 보수 진영에서는 평준화 정책 축소를, 진보 진영에서는 평준화 확대를 지향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중·고교 평준화를 가장 강력하게 추진했던 시기는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하던 때였다. 덧붙여 과외 금지와 본고사 폐지, 입학전형의 학력고사 일원화로 가장 평등한(?) 입시정책을 도입하고 실행한 시기는 5공화국이었다. 암울했던 군사독재 시절이었다고는 하나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소위 말해 있는 집 아이들과 같은 교육공간에서 같은 교육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 교육을 통한 계층 간 이동을 꿈꿀 수 있었다고 하겠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기술변화 추이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요구에 걸맞는 교육이 필요한 시점에서 단지 기회의 평등만을 내세워 모든 학교를 평준화해야 하고 입시 역시 공정성만을 이유로 수능 위주의 지필고사 중심으로 회귀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다양한 교육 수요에 맞춘 다양한 교육을 우리 사회가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명제에 보수와 진보가 따로 일 수 없다. 과거 나라 살림이 어려웠음에도 고교과정을 누구나 이수할 수 있었던 것에는 사학의 기여가 매우 컷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특례학교인 자사고를 재지정 평가를 통해 설립 취지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주기적으로 평가하는 것도 필요한 과정이라 하겠다.

교육기관 평가의 목적은 단순히 평가에 따른 교육기관의 퇴출이나 전환이 아니라 학교 운영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여 해당 교육기관이 설립 취지에 맞게 운영되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일반고 역시 지금처럼 특목고, 자사고의 선택을 받지 못한 아이들의 학교가 되어서는 안된다. 일반고에서도 학생들의 적성과 수요에 맞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제공될 수 있도록 국가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자사고에게 주어지는 교육과정 운영의 다양성을 일반고에게도 동등하게 보장하고 이를 예산으로 뒷받침한다면 학생들이 굳이 특목고, 자사고에 가야할 이유가 있을까? 자사고도 자사고이지만 고등학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반고에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를 고민하고 이를 지원하기 위한 예산 규모 확대가 더 우선일 것이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