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희 논설위원/한국선비정신계승회장

강준희 논설위원/한국선비정신계승회장

(동양일보) 하늘 보기가 두렵다.

하늘 보기가 무섭다.

그래서 인간으로 태어난 게 괴롭다.

이 무슨 업보요 이 무슨 과보인가.

그렇다고 김삿갓(김병연)처럼 삿갓을 쓰고 다닐 수도 없고 달마처럼 면벽(面壁)을 하고 살 수도 없다.

그래도 김립은 ‘이십수하(二十樹下)’란 시에서 인간개유칠십사(人間豈有七十事)라 하여 ‘인간으로 어찌 이런(일흔, 칠십) 일이 있으리요’하고 풍자라도 했고, 달마는 그래도 9년 면벽의 참선으로 오도(悟道)의 경지에나 이르렀지만 우리는 삿갓도 못쓰고 참선도 못하고 보니 그저 기막힐 따름이다.

어쩌자는 것인가.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얼마 전에는 대학생들이 저희 스승인 교수를 대학 내 캠퍼스에서 폭행하고, 며칠 전에는 고등학생들이 저희 스승을 구타하더니 이번엔 또 어느 여중학교 교사가 열네 살짜리 여중 2년생 제자를 술집으로 유인해 술을 먹이고 여관으로 데려가 능욕하고 그래도 모자라 70만원을 받고 팔아넘겼다는 천인공노(天人共怒)의 일이 생겼다니 이런 세상에 사는 우리가 어찌 사람일 수 있겠는가.

사도(師道)가 땅에 떨어진지 이미 오래요 교권(敎權)이 결딴난 지 이미 오래여서 교사는 있으되 스승은 없고 학생은 있으되 제자는 없다는 이 기도 안 차는 소릴 들을 때마다 우리는 그래도 행여나 설마 했다.

그런데 이 행여 나와 설마가 배반당해 우리 앞에 서고 보니 우리는 하도 망연해 하늘만 우러를 뿐이다.

아는 얘기지만 스승의 은혜는 하늘만큼 커 임금과 아버지를 합쳐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 하고 그런 스승이 너무 경외(敬畏)스러워 그림자도 감히 밟지 않는다 했다.

스승의 은혜와 존경이 망극해 태산교악(泰山喬嶽)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난날의 제자는 말할 것도 없고 스승은 오로지 제자 위한 생각과 제자 가르치는 일에만 전심전력해 교육 아닌 것에는 한눈팔지 않은 채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오매불망 제자 위한 마음만으로 일관했다.

그래서 교육자를 성직의 서열에까지 올려놓고 추앙했다.

그런데 이런 제자 이런 스승은 다 어디로 가고 제자가 스승을 구타하고 스승이 여제자를 능욕해 팔아먹는 야차 같고 두억시니 같은 세상이 되었는가.

참으로 기가 차고 어처구니가 없어 하늘을 볼 수가 없다.

물론 우리는 모든 교육자가 다 그렇다는 게 아니고 모든 학생이 다 그렇다는 것도 아니다.

세상이 아무리 요계지세(澆季之世)일지라도 훌륭한 스승은 있고 훌륭한 제자도 있다.

공자 당년에도 도척(盜跖)이 같은 흉악무도한 악인이 났는가 하면 천하의 폭군 걸주(傑紂)시대에도 이윤(伊尹)과 태공망(太公望) 같은 현인이 나지 않았는가.

교육이란 대저 무엇인가?

보여주는 것이다.

모범이 되는 것이다.

참되고 바르고 옳은 것을 몸소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자란 무엇인가의 답이 나와 스승 앞에 서면 자연 고개를 숙인다.

스승은 스승다워야 스승이다.

제자도 물론 제자다워야 제자다.

제자가 제자답자면 스승이 먼저 스승다워야 한다.

제발 당부하거니와 교육자는 루소의 ‘에밀’을 읽고 페스탈로치의 ‘은자(隱者)의 황혼’을 읽고 오바라 구니오시의 ‘교사도(敎師道·일명 樂天道)’을 읽기 바란다.

이 세 가지 책을 읽고 이 책의 반의 반 만 실천해도 이 나라 교육은 성공해 제자가 스승을 구타하고 스승이 제자를 능욕하는 천인공노는 없을 것이다.

이 나라 교육을 책임진 이들이여!

그대들이 진정 이 나라 교육을 위하고 이 나라의 꿈나무들을 생각한다면 이제부터라도 모범을 보여라.

교육자는 일거수일투족의 행동거지가 반듯해 모범을 보여야 하고, 인격이 고매해 존경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두루 해박한 실력을 갖춰 학생들이 따르도록 해야 한다.

학생들이 스승을 존경하면 문제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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