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호 청주시청원구세무과 주무관

신상호 <청주시청원구세무과 주무관>

(동양일보) 치매를 생각한다. 사랑하는 가족을 알아볼 수 없다는 것은 슬픔이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더욱 짙은 삶의 향기를 내지만 내 스스로 기억을 점점 지워가는 것. 나의 흔적을 잊어버리는 고통. 가끔씩 깜빡하는 것과 술로 인한 잊어버림 등과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다. 함께 하고픈 마음과 망각을 바라보는 고통을 감내하지 못하는 마음이 엉켜버린 실타래 같다. 오색실 타래처럼 다양한 색깔의 기억이 탈색되어가듯 점점 부분, 부분 없어져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조차 힘이 든다.

효도한 자식의 마음은 잊어버려도 불효한 자식의 마음은 잊지 않는가 보다. 평생 마음의 부담이었던 자식은 잊지 않지만 육십 년 동반자로 살다간 반려자의 이름은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사실이 아려온다.

부모가 계실 요양원을 찾으며, 아이가 어릴 때 첫 번째 사회생활의 또래집단을 만나는 것이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여기가 좋을까, 아님 저기가 좋을까 이리 재고 저리 재며 어린이집을 고르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하지만 그때 발품의 10%도 쓰지 않는 우리 모습에 놀란다.

요양원 입소 전 상담이 끝난 다음날 따르릉 전화가 울리고 목소리가 들린다.

“아들아, 내가 어제 잘못 이야기한 건 없니?”

혹시 본인의 잃어버린 기억으로 무슨 잘못된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하는 부모의 마음. 나이가 들어도 부모는 부모, 자식은 자식이다. 무너진 기억의 잔해에서 우리는 무얼 찾고 있는지. 우리 가족의 기억만은, 나에 대한 기억만은 부모가 잊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간절한 만큼 실망과 절망이 큰 것은 아닐까. 수 천, 수 만 조각으로 깨어진 기억을 하나하나 퍼즐로 맞춰가는 과정을 너무나 견디기 힘들어한다. 언젠가는 나 자신도 기억의 지우개가 지워버릴 거라는 엄청난 고통, 난 견뎌낼 수 있을까.

잊어버림의 병은 가족을 해산시키고 커다란 파멸의 구렁텅이로 떨어뜨리기도 하고 ‘긴 병에 효자 없다’라는 속담의 실증을 보여주는 일이 허다하다.

이 잊음의 고통은 우리는, 우리 사회는 어떻게 바라보고 도와줘야 하는가를 다시금 생각나게 하는 명제이다. 커다란 재난을 겪은 사람들에게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도록 심리적 지원이 필요하다면 이제 치매 환자를 바라보는 가족들에게도 심리적인 안정을 위한 상담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젠 인생의 절반을 돌아온 나에게 치매의 고통은 내 주변엔 없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이 아니라 직접 피부로 다가와 깊이 있는 생각을 필요로 하고 고민하게 된다.

모든 것들은 봄을 그리워하듯 따뜻함을 그리워하고 소망한다. 잊음을 바라보는 시선의 온도를 높이면 자연스러움과 따뜻함을 알게 되는 건 아닐까 싶다. 인정하고 감사하다 보면 ‘그래, 이것이 인생이지. 인생은 아무리 슬퍼도 아름다운 선물이지.'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어야겠다.

슬픈 기억을 잊으려 기억의 한 보퉁이를 잡고 치매와의 힘겨운 삶을 싸우고 있는 우리들의 부모를 잊어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고, 작지만 기억하는 것 그것 자체가 존재의 의미가 되고 존재 자체가 기억임을 잊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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