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진 음성 동성초 교사

(동양일보) 아이들도 세상을 풍자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아이들은 거침없이 말을 한다. 그 거침없는 말이 듣는 사람을 당혹스럽게 하고 때로는 예의 없는 말을 했다고 꾸중을 듣기도 하지만 아이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이 시대가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기도 하다.

얼마 전 조회 시간에 애국가를 부르던 중 한 아이가 애국가의 첫 소절을 개사하여 ‘동해 몰카 백두산이’라 부르고 있었다.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장난을 치는 아이에게 애국가의 경건함을 일깨워 줄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씁쓸함에 헛웃음이 나왔다. 여기서 잠깐, 아이는 정말 멋모르고 애국가를 개사했을까? 물론 사안의 중대성과 심각성에 대해 어른들만큼 깊이 이해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고학년쯤 되면 요즘 문제가 되는 사안 정도는 가늠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NIE(Newspaper In Education, 신문활용교육)는 국어와 사회 시간에 종종 사용되는 수업 방법이다. 그런데 요사이 다뤄지는 기사들은 어찌나 선정적인 내용이 많은지 아이들에게 신문과 뉴스를 들이밀며 ‘꼭 보라’고 권하기가 쉽지 않다. 수업에 앞서 뉴스가 ‘모든 나이 시청 가능’인지 여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뉴스를 본 학생들의 질문은 더욱 절묘하다. “선생님, 그런데 사람들은 왜 마약을 하나요?”, “정치인들은 왜 서로를 욕하나요?”, “횡령이 뭐예요?” 이보다도 더 심오한 질문들을 쏟아내는 아이들에게 초등학교 교사라면 어떻게 답해 주어야 할까.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을 길러주기 위해 자세한 설명을 늘어놓다가도 추악한 어른들의 민낯을 드러내는 것이 두려워 ‘글쎄.’라고 에둘러 말하고 넘어간 적이 더러 있다. 어떤 방법으로 설명을 하든 더 좋은 세상을 위해 우리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다. 그러기 위해 학교가 할 일이 있다면 그 몫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참 슬프게도 ‘세상일이 교과서대로 되겠어?’ 하는 말을 종종 듣는다. 학교에서 아무리 열심히 가르쳐 봤자 소용이 없다니 학교의 존재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왜 교과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일까. 교과서가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세상일이 잘못된 것일까.

여전히 많은 사람은 학교에서 배운 것이 세상의 밀알이 되기를 희망하고 또 학교에서 배운 그대로 바르게살기 위해 애쓴다. 나는 정의로운 법과 제도의 구현이 이러한 믿음에 모범답안지가 되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교과서가 틀리지 않았음을 그리고 학교에서 지낸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가 알고 있는 가치 있는 것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소중히 여겨지고 있다는 것을 경험할 때이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도 조롱거리가 되는 뉴스가 넘쳐나고 있다. 이 땅에 아이가 줄어들고 있다고 한탄하기 전에 이 땅을 아이들이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 어른들의 책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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