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재 충북대 명예교수/전 한국진공학회장

강희재 충북대 명예교수/전 한국진공학회장

(동양일보) 혹시나 하면서 걱정하던 사태가 급기야 터지고야 말았다.

지난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던 연구개발의 대일의존도 문제가 현실이 됐다. 일본은 이 약점을 무기삼아 반도체소자 제조공정에 필수적인 주요소재의 수출 길을 사실상 막아버리려고 하고 있다.

대한민국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이 마비될 수 있는 위기상황이 시작됐고, 향후에도 추가적인 일본의 규제가 더해진다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넘어서 다른 산업분야까지 마비되는 재앙이 시작될 수 있다.

차세대 기술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에너지소자의 기본인 배터리도 일본이 주요기술을 독점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배터리셀을 분리해서 감싸는 알루미늄 파우치기술은 전적으로 일본에 의지하는데 그 파우치가 없으면 우리나라는 이차전지를 생산할 수 없다.

그 정도로 우리나라 첨단기술의 기본을 이루는 기반기술에 대한 대일 의존도가 높다.

도대체 원인은 무엇일까? 그 대표적 하나는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와 이해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한 예로 이번에 문제가 된 반도체소자제작의 핵심공정인 극자외선(Extreme Ultraviolet: EUV) 광원을 이용한 포토공정에 쓰이는 감광물질 및 마스크 연구는 미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을 포함한 반도체 선진국에서는 이미 1990년대부터 연구를 시작했다.

특히 극자외선 리소그래피 공정개발에는 국가가 주도하는 산학연 컨소시움형태로 각 집단을 수용, 연구를 진행해 왔다. 이런 국가주도의 기초과학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EUV 장치를 상용화했고 이에 대한 요소기술을 각 국이 서로 확보했다고 판단된다.

일본은 소형까지 포함해 거의 20기에 가까운 방사광가속기를 보유중인데, 신형 방사광가속기 3기를 더 구축하는 계획을 하고 있다.

방사광가속기는 기본적으로 극자외선 영역인 수십 eV(전자전압)부터 강한 X선 영역인 수천 eV(전자전압)대 에너지의 다양한 빛을 이용해서 기존의 알지 못했던 물질의 물리적 화학적 성질을 규명해 내는 거대연구시설이다.

그래서 방사광가속기라는 이름 보다는 실제론 "빛공장" 이란 말이 더 적합하다.

최근에는 강력하고 결이 곧은 방사광 빛을 이용한 차세대 반도체 식각공정에 대한 연구까지 미국과 일본, 독일에서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방사광가속기는 산업체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과학시설이고, 부품 및 소재 산업에선 필수적인 시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995년 포항방사광가속기가 준공된 이후로 지금까지 25년간 대한민국 과학기술 발전에 지대한 기여를 했고 매년 600여편의 좋은 논문들이 생산되고 있고 미래 신기술 개발의 핵심으로 쓰이고 있다.

영국은 Daresbury에 방사광전용 가속기를 1981년 세계 최초로 건설했다. 노벨상도 나왔고, 지금 방사광가속기에 사용되는 엄청난 기술들이 이곳에서 개발이 된다.

그리고 2008년에 28년간 운용을 훌륭히 했다고 자평하면서 시설을 닫았다. 그러는 와중에 영국은 차세대 방사광가속기(당시 최고 사양)를 2001년부터 설계하기 시작해서 2007년에 오픈을 한다. 그게 Diamond Light Source 이다.

그리고 향후 45년간 운영한다고 발표를 했다. 독일도, 미국도 똑같다.

이제 우리도 새로운 밝은 광원을 새로 구축해 차세대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부품산업 뿐만 아니라 신약 개발에서도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기초연구결과를 축적할 때가 됐다고 판단된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과감한 투자를 결정해서 국제경쟁력을 갖춘, 새로운 밝은 빛의 방사광 설치로 차세대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 신소재 개발, 연료전지용 촉매제 개발 등 기초과학과 응용산업분야까지 연구의 주도를 잡을 수 있는 시기가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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