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세상 살기 참 힘들어져 간다. 면접 때 부모 직업, 출신 지역. 결혼 여부 등을 물어 보면 처벌받게 생겼으니 어디 이게 사람사는 세상인가.

정부는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채용절차법) 시행령을 일부 개정해 오는 17일부터 시행한다.

개정안에 따르면 구직자의 개인정보 수집가능 항목은 사진, 학력(출신대학 포함), 연락처, 주소, 병역사항, 장애여부, 보훈사항 등이다.

반면 용모, 키, 체중 등 신체적 조건, 출신지역, 혼인여부, 가족학력, 가족직업, 가족재산 등에 묻거나 자료 제출을 금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1회 위반시 300만원, 2회 400만원, 3회 이상부터는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개정안은 또 채용과 관련해 청탁이나 압력, 강요 등을 하거나 금전이나 물품, 향응 등을 주고받은 경우에는 한차례 위반시 1500만원, 두차례 이상 위반시 3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이 법은 당초 채용절차를 공정화하고 일정한 경우 제출서류 반환을 의무화하는 등 구직자의 부담을 줄여주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그런데 블라인드 채용 바람이 불면서 민간기업에까지 확대하는 것으로 법 개정이 이뤄졌다. 구직자 개인의 사적인 신상 정보를 요구할 수 없게 한 것이다. 구직자 인권 보호로 청년구직자들이 채용과정에서 눈물을 두 번 흘리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런데 아무리 구직자 인권과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한다는 취지지만 사람끼리 부딪치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법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구직자에게 피해를 줄 가능성이 없는 항목에까지 일일이 법으로 규제한다는 것은 직원 채용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상대를 처음 대면할 때 신상부터 물어가면서 말문을 트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하면 대화를 풀어가는 윤활유라 할 수 있다. 혈연, 지연, 학연을 중시하는 한국사회에서 고향이 어디냐, 결혼했느냐 등을 묻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런데 이런 것을 정부가 나서 법으로 규제하겠다고 하니 기업의 고유 권리인 직원 채용도 눈치를 봐야 하는 판국이 됐다.

키가 작아 고민하는 구직자에게 키가 얼마냐고 물어 마음에 상처를 주는 면접관은 없을 것이다. 용모가 이쁘니 어떠니 하며 면전에 대고 품평을 하는 몰지각한 회사도 없을 것이다. 부모의 학력이나 재산을 묻는 행위, 역시 정상적인 회사의 면접관이라면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굳이 법으로 정보수집 불가항목으로 분류하지 않아도 현장에서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미 면접과정에서 상대방을 배려하려는 의식이 성숙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출신지역이나 혼인여부, 가족직업 등에 대해 묻지도, 자료기재도 못하게 하는 것은 신뢰와 언로(言路)를 막는 심각한 간섭행위다.

구직자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 것은 당연히 있을 수 있다. 고향도 모른 채 사람을 뽑게 한다는 게 가당치나 한 것인지 묻고 싶다. 혼인여부를 묻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한 가족이 돼 직장생활을 함께할 사람이 결혼을 했는지, 안했는지도 모르고 얼굴을 맞대고 근무한다? 이런 것이 인간사회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부모직업에 대해서도 그렇다. 부모가 무엇을 하는지 묻는 게 이상할 게 없고 대답하기 싫으면 그저 그렇게 답하면 된다. 오히려 법으로 규정해 말문을 닫게 하고 처벌까지 하도록 한 발상이 가소롭다. 면접은 지식을 넘어 인성을 파악하는 기회다. 따라서 기업이 구직자의 가정환경과 성장과정을 살펴보면서 마땅한 인물을 선택한다는 것은 그들의 권리다. 정부가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할 성질이 아니다. 일각에선 이 법 때문에 나쁜 마음을 먹은 구직자가 면접 때 녹취한 뒤 불합격되면 문제 삼는 일도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개인정보, 인권 보호 당연히 해야 한다. 그렇다고 기업이 할 일을 정부가 나서서 시시콜콜 간섭하고 법으로 규제할 때가 아니다.

“아버지 무슨 일 하시죠?”라고 물었다간 과태료 무는 세상. 도대체 누가 무슨 의도를 갖고 현실에 맞지 않는 이런 법을 만들었는지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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