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 논설위원 / 시인

나기황 논설위원 / 시인

(동양일보) 지난 주말 폭염주의보를 무릅쓰고 따끈따끈한 나들이를 했다. 합이 맞는 지인 몇이 영명축일(세례명을 기념하는 날)을 맞은 은퇴사제를 모시고 식사나 한 끼 하자며 뜻을 모았다.

금강휴게소에 들러 점심을 하고 속리산 쪽 그늘 막을 찾아보자는 어벙한 계산으로 일단 데일 듯 달구어진 핸들을 잡았다. 몇 십 년 맺어온 인연들이지만 대화의 주제는 늘 새롭다.

그래서 좋다. 한낮에 파라솔 그늘에 둘러앉아 잔잔히 흐르는 금강을 내려다보며 담소를 나누는 시간이 불볕 속을 달려온 노고를 위로해준다.

연령층이 60대에서 80대까지니 자연스레 나이 쪽으로 대화주제가 잡힐 때가 많다.

노 사제께서 ‘마무리’를 화두로 던져놓고 말씀을 잇는다.

“요즘 들어 어떻게 인생(노년)을 ‘마무리’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돼.

노인이 그저 ‘나이든 사람’, ‘쓸모없는 사람’으로 대접받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지.

스스로도 그래, 그동안의 연륜과 지혜를 공유할 생각을 해야지. 그래서 노인은 ‘무엇인가 가치 있는 것을 남겨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이 바뀌어야 해. 그래야 노년이 아름다워져.

노인을 부담으로만 바라보는 젊은이들을 탓할 게 아냐. 어른들이 좋은 표양을 보여주지 못한 탓이 크지. 본받을만한 어른이 없는 사회가 얼마나 불행한 사회야. ‘이 놈’하고 야단을 쳐 줄 어른들이 그리운 시대야. 우리만이라도 무엇을 남겨 줄 것인가를 고민하며 삽시다.“

화답이라도 하듯, 뽀얗게 물살을 가르며 수상스키를 지치던 젊은이가 손을 흔든다.

강 건너 매미소리를 실어오던 실바람이 파라솔을 흔들고 그늘도 따라 흔들리고 있다.

얼마 전 본지의 ‘동양포럼’에서 신 규 수필가는 ’생의 주기는 연령에 따라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관리와 세상에 대한 열정으로 구분되는 정서적 차원의 문제‘로 본다고 했다.

따라서 노년을 단지 죽음과 연관시켜 생각한다는 것은 ‘편협한 발상’이며, 노년의 삶과 죽음은 별개의 문제라고 했다.

맞다. 필자가 주장하는 삶의 본질 역시 그렇다. 인생은 길이의 문제가 아니라 부피의 문제라고 본다.

IMF외환위기를 겪은 첫 세대로서 우리 노인들이 어떻게 하면 노년을 잘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로드 맵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마무리를 할 나이가 꼭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마무리가 ‘삶의 가치, 가치 있는 삶’을 정리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젊을수록 유리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루라도 빨리 노인과 노년에 대한 바람직한 설정을 해 놓는다면 남겨진 삶을 더 풍요롭게 가꿀 수가 있는 기회가 많이 생길 거라는 얘기다.

평생을 사제로 살면서 청소년들의 교육에 특별히 애정을 쏟았던 한 노사제의 ‘마무리’는 단순하고도 명료하다. ‘공부하는 모습’이다.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공부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라 생각해. 80이든 90이든 나이에 관계없이 책을 읽으며 끊임없이 공부하는 모습, 그게 내 마지막 소명이라고 생각해. 요즘 라틴어, 이태리어, 영어, 독일어 4개 국어로 성경필사를 하고 있는데 같은 맥락이지. 같은 구절의 성경을 각기 다른 언어로 해석하다 보면 행간의 미묘한 차이가 여간 매력적이지 않아.”

노 사제는 서양속담이라며 세 친구에 관한 얘기를 들려준다.

인생에서 친구가 셋은 있어야 한다. 행복을 가져다주는 친구들이다.

첫 번째 친구가 책(독서)이다. 책은 지혜를 주고 외로움을 덜어준다.

두 번째가 음악이다. 음악이란 친구는 사람을 위로해 준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세 번째 친구가 ‘시(詩)’다. 시는 사람의 품격을 높이고 우리를 격조 있는 삶으로 초대한다.

세 친구를 다 가진 사람도 있고, 한 친구도 갖지 못한 경우도 있다.

번잡한 일상을 피해 아무 생각 없이 ‘푹 쉬고 싶다’는 바람은 아마 올해도 이뤄질 것 같지 않다. ‘마무리’의 나이 대에 하루하루 조금씩 삶을 재단하며 세 친구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7월이 다시 분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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