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전취식 현행범 체포과정 저항…법원 “적법 공무집행 아냐”
일선 경찰관 “남일 같지 않다”…주취자 대응 불안감 등 호소

(동양일보 이도근 기자) “범인보다 취객이 더 무섭습니다.” 술에 취해 식당에서 난동을 부리다 출동 경찰관을 폭행한 40대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법원은 적법하지 않은 체포과정에서 이뤄진 폭행이어서 공무집행방해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법원 판단했지만, 일선 경찰관들은 “현장의 어려움을 모르는 처사”라고 하소연했다.

청주지법 형사1단독 고승일 부장판사는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A(47)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14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10월 3일 청주시 서원구 한 치킨집에서 만취한 상태로 자신을 무전취식 혐의로 현행범 체포하려는 경찰관에게 저항하고, 이 과정에서 경찰관의 얼굴을 때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치킨집 주인은 술에 취한 A씨가 술값을 계산하지 않고 버티자 가게에서 나가달라고 요구했으나 이를 무시하자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조사됐다. 주인은 경찰에게 “술값이 얼마 되지 않으니 나가게만 해 달라”고 요청했다. 경찰은 A씨에게 신분증 등을 맡기고 귀가할 것을 거듭 요구했으나 A씨가 “알아서 (가방에서) 뒤져가라”는 식으로 꿈쩍도 않자 그를 무전취식 혐의로 체포했다.

이런 A씨가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은 법원이 당시 경찰의 현행범 체포를 적법한 공무집행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 부장판사는 “사건 당시 치킨집 주인이 술값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했고, 경찰관이 피고인의 가방을 열어 신분증이나 술값을 지불할 카드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피고인에게 무전취식의 혐의를 물을 만한 사정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적법성이 결여된 직무행위를 하는 공무원에게 대항해 폭행이나 협박을 가한 것은 공무집행방해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지역 법조계도 공무집행방해 사건에 대한 법원 판단이 엄격해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공권력 도전행위에 대해서는 벌금형보다 징역형이나 법정구속 등 엄벌을 내리고, 경찰관의 공무집행 적법성에 대해서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일선 경찰관들은 반발하고 있다.

경찰관들은 과잉대응 징계 등이 두려워 제대로 된 대응이 어려울 수 있고, 역으로 ‘만만한 경찰’, ‘매맞는 경찰’이 될 수 있다고 하소연했다. 한 경찰관은 “경찰을 ‘민중의 지팡이’가 아닌 ‘민중의 샌드백’으로 불러야 할 것”이라고 자조섞인 한 마디를 던졌다.

과거보다 기준을 강화한 물리력 행사 방침도 마련됐으나 현장에서 적용하긴 쉽지 않다. 문제가 생길 경우 민사상 부담을 경찰관 개인이 져야 하는 것은 전과 똑같기 때문이다. 지금도 경찰은 취객이 경찰서·지구대 등에서 난동을 부리면 공무집행방해죄를 적용하기보다 경범죄처벌법상 ‘관공서 주취 소란죄’로 입건해 처벌하는 등의 조치만 취하고 있다.

최근 교통법규를 어긴 운전자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다치게 한 경찰관에게 4억4000만원의 배상판결이 나오자 경찰 내부망에 불만 댓글 1000여건이 한꺼번에 올라오기도 했다.

한 지구대 경찰관은 “경찰이 술 취한 민원인에게 손을 대면 문제가 커지는데, 주취자가 경찰을 폭행하는 일은 하루에도 수차례씩 일어나도 잘 알려지지 않는다”며 “공무집행방해로 입건해봐야 과잉진압 논란이 나올 수 있어 손을 떼는 경우도 있다”고 토로했다. 이도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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