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희/논설위원/한국선비정신계승회장

강준희 논설위원/한국선비정신계승회장

(동양일보) 1997년 11월 28일. ‘국민의식에 호소함’이란 제목으로 어느 신문에 다음과 같은 칼럼을 쓴 바 있다.

이를 어쩌나. 이를 어쩌나. 국가가 부도가 나 파산선고를 했으니 이를 대체 어쩌나.

개인이 부도가 나 파산을 하고, 법인(회사)이 부도가 나 파산을 했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국가가 부도가 나 파산선고를 했다는 소리는 듣느니 처음이다.

큰일이로다. 큰일이로다.

나라가 파산을 해 IMF(국제통화기금)에 긴급히 구제금융 지원을 요청했다면 이는 미상불 여간 다급한 일이 아니어서 발등에 떨어진 불똥이다.

그러므로 IMF에 금융지원을 요청했다는 것은 결론부터 말해 금융의 신탁통치나 다름없다.

어찌할 거나 어찌할 거나. 이 노릇을 대관절 어찌할 거나.

나라 경제가 닻을 잃고 표류하는 배처럼 위태하고 궤도를 이탈한 열차처럼 언제 전복될지 모를 불안감에 빠져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환(煥)투기에 혈안이 돼 1억 달러에 가까운 엄청난 돈을 현찰로 챙기는 기업이 있고 몇 십만 또는 몇 백만 달러어치의 물건을 사제기한 장사꾼도 있다니 오호라, 대체 이들은 어느 나라 국민인가?

그러나 우리는 이것뿐이라면 말도 안 한다. 모두가 죽겠다 죽겠다하면서도 웬 돈이 그리 많은 지 한 개에 몇 천만원 하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없어 못 팔고 한 벌에 몇 천만 원 하는 외제 모피 코트가 동이 나다시피 한다니 이러고도 우리가 안 망하면 이게 되레 기적이다.

가구 하나에 몇 천만 원, 외제차 한 대에 몇 억원, 한 달이 멀다고 해외에 나가 펑펑 써대는 돈이 또 몇 천만 원.

모피 수입 세계 1위에 가구 수입 또한 세계 1위다. 기름 소비량(인구비율)도 세계 1위요 골프채 수입은 어쩐 일로 세계 2위다. 참 대단한 나라요, 대단한 국민이다.

고작 국민소득 1만 달러에 소비는 2만 달러도 넘으니 이 어찌 대단한 나라, 대단한 국민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국가 안보와 국민의식과 공직자 기강(자세)은 어떤가?

우리는 이번에 민주평통자문위원이며 남북적십자회담 자문위원인 K모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가 36년간 고정 간첩으로 활동하고, 전 서울지하철공사 동작 설비분조장 S모씨가 39년간 간첩으로 암약하고 부부가 또한 간첩으로 암약하다 일망타진된 것은 지난해에 있은 강릉의 잠수함 사건 및 무장공비 침투사건과 함께 우리의 대공의식이 얼마나 해이하고 안보의식 또한 얼마나 허술한가를 여실히 증명해주는 단적인 증거라 할 수 있다.

정신 차려야 한다. 정신도 아주 바짝 단단히 차려야 한다.

안 그러면 우리는 저들 북한에 지고 만다. 생각해 보라.

날만 새면 전쟁에만 광분해 걸음마 익히는 아이 적부터 보고 배우느니 남한 쳐부수는 것뿐 이어서 일당백(一當百) 또는 일기당천(一騎當千)이 지상 목표인데 어떻게 안보의식은 물론 국가관마저 없이 하고 한날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며 환락에 빠져 흥청거리는 우리가 저들을 이길 수 있단 말인가.

정신 차릴 일이다. 지금 이 시각부터 당장 정신 차릴 일이다.

오죽하면 귀순용사와 귀순간첩들이 우리 하는 꼴을 보고 “큰일났습네다. 남한 참 큰일났습네다”하며 이구동성 입을 모았겠는가.

안보에는 너와 내가 없다. 국민된 자 뚜렷한 국가관을 가져야 하고 공직인된 자 청렴해 국민의 수임자임을 알아야한다.

정부 기업 등 주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과 경제주체들은 나라가 위기에 처한데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고통 감수의 선봉에 서야 한다.

주부들을 알뜰하게 가계를 꾸려 헛돈 쓰지 말아야 하고 가장(家長)들은 허장성세(虛張聲勢)로 돈 헤프게 쓰지 말아야 한다.

뿐만이 아니다.

달러 잡아먹는 해외여행 좀 삼가하고 쓸데없이 차 몰고 다니는 것 삼가야 한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웬 차는 그리 많아 아무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먹고 노는 사람도 차는 몰고 다닌다.

이러니 기름 소비량과 주행 거리가 세계 제일일 수밖에.

차제에 당부하노니 전국의 단체, 기관장들이여! 이 기회에 승용차 타지 말고 대중교통 이용할 용의는 없는가?

만일 다행하게, 참으로 다행하게 승용차 타지 않고 도보나 대중교통 또는 출퇴근 전용 버스를 이용한다면 당신들은 일석육조(一石六鳥)의 크나큰 애국을 해 나라에 엄청나게 이바지 할 것이다.

아, 그러나 이것이 나만의 바람이라면 이 일을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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