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 500년의 문화유산… 학문의 공간, 선열에 대한 존경의 공간

 
 
청주시 용정동 이정골에 위치한 신항서원 전경.
청주시 용정동 이정골에 위치한 신항서원 전경.

 

(동양일보) 별이 빛나는 밤에 나는 물었다. 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하고 어떤 사랑을 해야 하는지, 별들은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두운 밤하늘에 총총히 빛나고 있었다. 7월에 피는 쑥부쟁이에게 나는 물었다. 나는 왜 하는 일마다 아픔이 많은지,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지. 쑥부쟁이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납작 엎드려 내 신발에 진한 향기를 뿌리고 있었다.

흐르는 강물에게 나는 물었다. 나의 노래와 나의 시를 세상 사람들이 외면하는지, 어찌해야 사랑받을 수 있는지. 강물을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하나의 풍경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 아, 나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모든 언어를 버리고 삿된 욕망 부려놓고 밤하늘의 별처럼, 붉게 빛나는 장미처럼, 흐르는 강물처럼 하나의 풍경이 되려면 나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몸과 마음이 엉망일 때는 일탈을 꿈꾼다. 나를 위로해 주고 내게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 줄 수 있는 그 무엇을 찾아 나선다. 오랜만에 이정골을 어슬렁거렸다. 산 아래에 저수지가 있고 마을이 있으며 마을 끝자락에 서원이 있다. 미술관이 있고 느티나무 숲과 돌담이 있으니 여기가 도시인가 싶을 정도다. 도시에서 맛보는 역사의 숲, 생명의 숲이다.

소수서원, 도산서원, 병산서원, 옥산서원, 도동서원, 남계서원, 필암서원, 무성서원, 돈암서원…. 최근에 조선시대 교육기관인 한국의 서원 9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한국의 산사가 우리 불교 1000년의 문화유산이라면, 서원은 유교 500년의 문화유산”이라고 말했다. 사학의 공간과 선열에 대한 존경의 공간이 어우러진 문화유산은 한국의 서원밖에 없다며 등재의 의의를 설명했다.

조선시대 지방의 교육기관은 크게 향교와 서원으로 구분된다. 향교는 지방관학의 대표적인 기구다. 향교는 인재 양성과 유교이념 보급을 위해 ‘일읍일교(一邑一校)’의 원칙하에 전국에 건립되었다. 고려 인종 5년(1127)에 등장했던 향교는 조선초기부터 모든 군현에 설치되었고, 중앙에서는 교수(敎授)와 훈도(訓導)를 파견해 교육활동을 지원했다.

그렇지만 향교는 시간이 흐를수록 교육기능을 상실하였다. 관학을 육성해 인재를 양성하기보다 과거를 통해 인재를 뽑아 쓰는 것에 중점을 둔 국가의 교육정책 때문이고, 문묘(文廟)의 향사를 하는 관학으로 그 면모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16세기 후반 관학 교육의 부실을 비판하며 그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서원이다.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서원이 최초의 서원이다. 주세붕은 풍기군수로 부임하면서 향교 교육 진흥을 위한 보조건물로 서원을 건립했고 과거 공부의 장소로 삼았다. 그리고 주세붕에 이어 풍기군수로 부임했던 퇴계 이황에 의해 서원이 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황은 중국 삼대의 이상사회 실현을 정치의 목표로 삼았지만 현실은 암울했다. 훈척세력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고 개혁세력들은 거듭된 사화로 쓰러졌다.

이황은 전대의 실패를 교훈삼아 사림들의 힘을 기르는 전략으로 중국의 주자성리학 도량이었던 서원제도에 주목하고 새로운 운영방식을 제시했다. 향촌사회의 교화를 담당할 주체로서 성리학으로 무장하고 군자(君子)를 목표로 하는 인재 양성소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래서 서원의 건물을 학습을 위한 공간, 내적 수양의 강당, 동·서재와 사림의 사표가 되는 인물의 제향공간으로 정식화했다. 스스로 학습하고, 정기적인 강회(講會)와 토론, 사묘(祀廟)에서의 예의와 존중이 핵심이었다. 유생들의 자율적인 운영구조였다. 이 때문에 17세기에는 서원의 수가 900여 개소에 이르면서 조선 교육기관의 중심으로 등장했다.

그렇지만 서원의 무분별한 건립으로 본래의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부패의 온상이 되기도 했다. 문중서원이 등장하고 지방 정치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했다. 미래에 대한 비전과 이를 견인할 주도세력이 없이 자신들의 신분적 지위 유지에만 급급했다. 조선 500년 왕조의 종말은 무능과 부패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청주시 용정동 이정골의 신항서원은 1570년(선조 3년)에 창건했다. 송상현·이색·이이·이득윤 등의 덕행을 추모하고 학문을 장려하는 곳이었다. 임진왜란 때 훼손된 것을 복원해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중심으로 자리잡았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년)에 훼철(毁撤)되었다. 1957년 청주의 유림들에 위해 재건되었지만 한 동안 시민들의 등 뒤에 있었다. 최근에서야 이곳에서 인문학과 탐방 프로그램,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숲과 계곡과 마을의 풍경이 호젓하다. 옛 사람들의 학문에 대한 정진이 얼핏얼핏 스쳐온다. 서원 입구에 미술관이 있다. 회화, 공예, 조소, 미디어아트 등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으로 가득하다.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을 때, 몸과 마음이 천근만근일 때 역사의 길, 문화의 길을 걷자. 그 곳에서 내 삶의 도파민을 찾아보자.
 

신항서원 정문.
신항서원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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