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대의 검’ 세계 정상에 꼿다… U대회 펜싱 단체전 금메달
교통사고로 전치 25주...오뚝이처럼 일어나 국제대회 우승 견인
선수로써 최종 목표는 '국가대표'..."그 꿈 반드시 이뤄낼 터"

 

“한 마디로 기적의 연속이었습니다. 먼저 매 경기 혈전을 치르며 함께 울고 웃던 동료선수들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도해주신 이우만 지도교수님, 최원준 감독님께 이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처음 펜싱 검을 잡은 순간부터 제 인생의 목표는 오직 ‘국가대표’였습니다. 교통사고로 인한 후유증으로 조금 더디긴 하겠지만 그 꿈을 향해 묵묵히 나아가겠습니다.”

지난 4~9일 6일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열린 30회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세계학생스포츠대회) 펜싱 에뻬 단체전에서 신들린 기량으로 세계 강호들을 모두 물리친 금빛 파란의 주역 이승현(23·사진·청주대 사범대학 체육교육학과 4년) 선수.

이번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출전한 한국 펜싱 대표팀(4명)의 평균 신장은 177cm에 불과한 반면, 외국 선수들은 185cm 이상이었고 대부분이 국가대표였기 때문에 신체적인 조건이나 스펙에서 상대적으로 큰 차이를 보였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한국대표팀은 매 경기마다 스피드와 체력, 정신력을 바탕으로 허를 찌르는 기습위주의 경기를 펼치며 승승장구했다.

한국대표팀은 16강에서 미국을 45대 26으로 대파한데 이어 카자흐스탄(8강·42대 41)과 이탈리아(4강·45대 38)를 차례로 꺽고 결승에 진출, 2017 대만유니버시아드대회 디펜딩챔피언인 세계최강 러시아마저 45대 31로 물리치며 값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뜻밖의 결과에 어리둥절한 러시아와 이탈리아 대표팀에선 경기가 끝난 뒤 우리선수들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한동안 웅성거리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1주일 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유니버시아드대회 대표팀 합동훈련을 통해 팀워크나 이미지트레이닝, 상대에 대한 분석과 전략 등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특히 학교에서 펜싱의 기본기와 정확도, 체력훈련은 물론 심리적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격려해준 것이 저에겐 큰 힘이 됐습니다.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앞으로 학교에 눈치안보고 마음껏 운동할 수 있는 펜싱장이 생긴다면 국제대회에서 더 좋은 결과가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선수는 서울에서 태어나 덕원중과 서울체고를 졸업하고 2016년 청주대에 펜싱특기생으로 입학했다. 이미 고교시절부터 전국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촉망받는 엘리트선수로 이름을 알렸지만 대학 1학년 때 운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오던 중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선수생활을 마감해야 하는 위기를 맞게 됐다. 그는 당시 사고로 대퇴부·경추 골절(전치15주)과 양쪽 무릎 반월상 연골, 십자인대가 파열(전치10주)되는 중상을 입고 1년 가까이 병원신세를 져야만 했다.

“새내기 대학생으로 한창 즐겁기만 했던 스무 살. 지금도 생각하기조차 싫은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큰 사고였기에 몸은 엉망이 됐고 더 이상 선수생활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방황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슬퍼하는 가족과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이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퇴원 후 2년간 재활치료를 꾸준히 받았지만 워낙 부상이 심한 상태였기에 국제심판으로 거듭나기 위해 지난해 국내심판자격증을 취득하고 영어회화를 배우는 등 선수생활을 포기하려고도 했다. 그러나 역시 아프니까 청춘이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펜싱선수로서의 아쉬움과 국가대표를 향한 열정이 마음 한 구석에서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이 선수는 특유의 근성으로 재활과 훈련을 병행하며 자신의 한계를 넘나들었고, 피나는 노력 끝에 결국 다시 검을 잡을 수 있게 됐다. 비록 부상으로 인해 비록 발은 느려졌지만 상대의 움직임을 먼저 예측하는 기술을 터득하게 되면서 경기력을 크게 끌어 올렸다.

이러한 이 선수의 노력으로 지난 2월 유니버시아드대표팀 선발전에서 최종 3위로 당당히 대표팀에 합류한데 이어 3월에 열린 회장배전국남녀종별펜싱선수권대회에서도 단체전 우승과 개인전 3위를 차지했다.

“모든 선수들의 꿈이자 목표인 국가대표선수촌 입성이 저의 첫 번째 목표입니다. 아직도 일반 선수들처럼 고강도훈련을 소화하기엔 역부족이지만 제 몸이 허락하는 한 최선의 노력을 다해 아쉬움 없는 경기를 펼치고, 최고의 성적을 거둬 저처럼 부상에서 재기하려는 선수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돼 주고 싶습니다.”

지난 11일 이탈리아 나폴리(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귀국한 이 선수는 ‘땀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오는 29일부터 있을 대통령배전국남녀펜싱선수권대회·국가대표선수선발전과 김창환배전국남녀펜싱선수권대회·국가대표선수선발전(8.19~8.23), 전국남녀종별펜싱선수권대회(9.2~9.8), 전국체육대회(10.4~10.8)를 위해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가족으로 아버지 이재원(51·경찰공무원) 씨, 어머니 고윤지(47·장애인특수학교 보조교사) 씨, 누나 이혜정(25)씨가 있다.

1965년 창단,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청주대 펜싱부는 나종관(익산시청), 마세건(상무), 김재원, 정승화(부산시청) 등 걸출한 국가대표 선수들을 배출해 왔다. 글·사진 조석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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