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국회의원

김종대/ 국회의원

(동양일보) 지난주에 방문한 베이징에서 온통 화제는 한·일 무역 분쟁이었다. 일본 전문가인 중국 사회과학원의 왕더쿤 경제와 정치 연구소 부소장은 필자에게 “일본은 한국에 대한 무역 보복을 6개월 전부터 준비했다가 G20 회의가 끝나기를 기다려 행동을 개시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전문가인 리청스 인민대 교수는 “미국과 중국 간에 벌어지는 5G 경쟁이 본질”이라며 “일본은 중국 반도체 시장점유율이 높은 삼성을 밀어내고 중국 5G 시장의 경쟁에서 한국을 견제하고 앞서나가려는 의도가 있다”며 현재 일본의 행동의 배경을 풀이했다. 리원 사회과학원 미국연구원 부소장은 아예 “한반도 문제에서 소외된 아베가 참의원 선거에서 한국을 제물로 승리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다양한 진단 속에서도 일관된 메시지가 있었다. 일본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한국을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다가올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한국을 눌러놓겠다는 결의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반도체 다음으로 미래 자동차 분야에서도 전운이 감돈다. 저 멀리 한반도 남쪽에서 거대한 태풍이 다가오고 있는 조짐이 느껴진다. 우리는 거센 파도가 밀려오는 바다에 깃대처럼 서 있다.



중국에서 돌아온 다음 날인 18일에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5당 대표회담이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비공개 회의에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에게 거의 사정하며 “지금 일본의 수출규제에 맞설 수 있는 정부의 정책수단은 추가경정예산 밖에 없다, 3개월째 처리되지 않는 추경을 통과시켜 달라”고 했으나 황 대표는 “그건 내가 아니라 원내에서 결정할 일”이라며 나경원 원내대표에게 전가해버렸다. 다음날 임시국회는 빈손으로 끝나버렸다. 지금의 일본의 경제 공격은 단지 일시적인 감정싸움이 아니다. 해외의 석학들이 진단하는 것처럼 동북아시아의 정치·경제 질서가 재편되고 있다는 명확한 신호다. 그런데 우리 정치는 이 거대한 흐름을 직시하지 못하고 구한말 당시처럼 자존심 싸움만 하고 있다.



우리 산업체계는 대기업 중심의 수직계열화 체제다. 삼성의 납품업체가 한화나 LIG에 납품을 하면 “너는 누구 편이냐”며 괘씸죄로 찍힌다. 그러니 수평적 산업협력이 이루어지지 않고 대기업에 줄 서는 봉건제적 충성경제, 갑을경제로 짜여 져 있다. 대기업은 다른 대기업과 협력하지 않고 국내에 없는 부품이나 소재는 곧바로 외국에 의존한다. 이게 바로 일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종속경제제다. 이런 산업의 생태계로는 다가올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도저히 대비할 수 없고, 기업은 기업별로 각자도생의 길을 가야 한다. 그래서 정부가 선투자를 하고 산업 간 협력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체질전환을 이끄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데, 보수 야당은 “왜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냐”며 버럭 화를 낸다. 그래서 추경도 통과시킬 수 없다는 논리다. 일본의 공격 앞에서도 속수무책인 이유다.



일본에 대한 단기 대응도 중요하지만 지금 우리는 어디에 와 있으며, 어디로 가는지 성찰하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 지금 국가에는 이성의 용광로에서 낱낱이 분석하고 상상의 공장에서 뽑아 낸 생존전략이 요구된다. 만일 정치가 이 점을 직시하고 있다면 우리는 고통스럽지만 개혁의 길을 가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기득권 질서에 안주하면서 외환(外患)의 본질을 직시하지 않으면 그 대가는 매우 혹독할 것이다. 단기적 이익에 연연하여 일본과 외교적으로 사태를 봉합하는 소극적 대응은 일본의 더 큰 도발을 유도하게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다. 우리 스스로 산업을 일으켜 자강의 길을 가겠다는 강한 생존 의지가 있을 때 외교적 해결도 가능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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