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동양일보) 사람이 원만하지를 못하고 모가 나면 환영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옛말에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했다. ‘정’이 무엇인가. 돌에 구멍을 뚫거나 쪼아서 다듬는 연장이다. 돌이 둥글둥글하지를 못하고 모가 나 있으면 정으로 매끈하게 잘 손질한다는 말이다. 즉 사람이 두각을 나타내면 남에게 미움을 받게 된다는 것이고, 사람이 너무 강직하면 남의 공박을 받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런 줄 번연히 알면서도 가스러진 사람이 있다. 무슨 말만 하면 까탈을 부려 걸고넘어진다. 듣는 사람들은 이를 환영할 리 없다. “그 사람 말 옳은 말이긴 하다만 워디 듣는 사람은 그려. 자신의 생각을 하찮게 깔구 뭉개는 것 같이 들리제.” “그 사람 거 성격 탓여. 타고 난 성격 고칠 수 있남?” “왜 못 고쳐. 날 때부터 짊어진 사주팔자도 고친다는데.” “여하튼 그 사람 앞에선 무슨 말을 벙긋하지 말아야지 그랬다간 꼬투리 잡혀 진땀 빼기 일쑤지.” “이크, 저기 그 사람 오네. 그만 헤어지구 내일 들 보세.” 이렇게 모두들 그를 기피한다. 그런데도 그는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대로다. 하도 답답해서 하루는 그의 내자가 대놓고 쓴 소리를 했다. “여보시오, 당신 그렇게 똑똑한 사람이 우째 상대방 사람의 마음을 그리도 모르요. 뭣 좀 그런가부다 하고 넘어가는 게 있어야지 남의 말은 틀리고 당신 말만 옳다고 우겨대니 이 마누라 말고 누가 이해를 하겄수. 그러니 제발덕신 그 모난 성격 좀 고치시고 저 모오리돌 양반같이 둥글둥글 사시요!”

‘모오리돌’은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한 돌을 일컫는다. 그런데 이게 동네 김가(김선동)의 다른 이름이다. 그는 성격이 유순해서 남과 다투는 일이 없다. 그런 그를, 물에 물 탄 듯 밍밍하기 짝이 없어 맛없는 사람‘ 이라고 핀잔어린 말을 표해도 그저 피식 웃을 뿐이다. 어느 날인가 동네가 대판 시끄러운 일이 있었다. 이 김가의 안사람 때문이었다. “누구여, 누구, 우리 남편 찧고 까부르는 사람이. 뭐든지 트집 잡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것도 죄여, 맘 여려서 그려 왜. 왜 그런 사람 깔봐, 사람이 좋으니까 원 별일 다 보겄네. 이후라도 누구든지 우리 바깥양반 놀리는 사람 한번 나한테 다 걸리면 큰 코 다칠 줄 알어!” 김가의 처가, 그저 좋은 게 좋다고 그냥 넘어가는 자신의 남편을 동네서 이해 못하는 줄 알고 남편을 대신해서 발명하는 소란이었다. “안팎이 바꿔 됐으면 좋을 걸 그랬어.” “줏대 없는 남편과 사는 게 얼마나 속 터지는 일이면 대신 저러겠어.” “하여튼 저렇게 편들어주는 거 보믄 결혼은 하고 볼 거여.”

이런 일이 있었지만 평소에도 김가와 빈번한 접촉이 없던 터라 무슨 시끄러운 일은 이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이 몇몇 모인 자리면 심심찮게 그 김가와 그 모난 사람에 대한 말이 오갔다. “한배로 낳은 자식도 각각이라지만 한동네 대대로 살면서도 둥글둥글하게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사건건 모나게 사는 사람도 있으니 세상만사 천차만별여.” “그러게 말여, 근데 말여 이참에 그 김가를 아주 ‘모오리돌’이라고 하는 게 워뗘?” “‘모오리돌’, 그게 뭔디?” “앗따 이 사람,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한 돌’을 ‘모오리돌’이라는 거 몰러?” “그닝까 아무개처럼 삐딱하게 모나지 않고 만사를 둥글둥글하게 처신하는 김가를 지목하는겨?” “그려 이 사람아 인저 알 것어!”

이래서 김가의 다른 이름이 ‘모오리돌’이 됐는데, 동네에선 남정네 아낙네 할 것 없이 그 시끄럽게 잘난 체 하는 사람과 유야무야 넘어가는 이를 한데 붙여보기로 했다. 그래서 둘을 동네사랑방에 불러 앉혀놓고 다른 이들은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 나왔다. 그리고 밖에서 귀를 기울이며 그 둘의 돌아가는 형편을 궁금해 했다. 과연 어느 쪽이 이기고 어느 쪽이 지느냐에 관심이 쏠리는 거였다. 급기야 말소리가 들렸다. “자네가 말을 해야 내가 받아서 말을 하지” “자네 말이 옳으이. 하지만 내가 워낙 말주변이 없잖여.” “말을 왜 그렇게 둥글리고 있는가?” “것두 맞어. 자넨 다 옳은 말만 하는구먼.” “알겠네 아주 내가 말을 말어야지.”

그리곤 그 길로 조용하기만 하다. 그제야 밖의 사람들은 무릎을 탁 치고 뿔뿔이 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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