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 논설위원, 시인

나기황 논설위원, 시인

(동양일보) 맛있는 요리는 우선 눈으로, 그다음에 냄새로, 그리고 맛으로 먹는다는 말이 있다.

말에도 ‘맛’이 있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인 것 같다.

“잘했구나“. 등 두드려주는 아버지의 말에서 무쇠솥에서 끓인 구수한 곰탕 냄새가 난다.

”난 많이 먹었다, 어여 먹어“하고 내어주는 엄마의 말에선 달착지근한 고구마 맛이 느껴진다.

“오구, 오구 잘도 먹네” 알맹이를 까서 기어코 입에 넣어주시는 할머니의 음성에서 짭조름한 눈물 맛이 난다. ‘수고했어요’ 저녁상을 차려주는 아내의 모습이 생강차처럼 따뜻하다.

마음과 마음으로 전달되는 칭찬과 위로의 말에서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느끼는 행복감을 넘어서는 감동을 맛보게 된다. 언어는 이처럼 사람과 사람을 잇는 가장 원초적인 수단이며 마음을 가꾸는 양식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언어는 대략 7,000가지쯤 된다고 한다. 언어의 기원설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성경에 의하면 온 세상이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낱말들을 쓰고 있었는데(창세11,1), ‘바벨탑 사건’으로 하늘의 노여움을 사게 돼 온 땅의 말이 뒤섞이고 사람들은 달라진 말을 따라 흩어지게 됐다고 한다. (창세11,9)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소통의 수단으로 언어를 만들었다는 ‘발명설’을 기원으로 삼기도 한다.

‘신수설(神授說)’이든 발명설이든 언어가 오늘날까지 이처럼 다의적인 의사전달 수단으로 자리 잡기까지 결정적인 역할을 한 언어는 ‘사랑의 언어’다.

즉, 언어가 지향하는 최고의 극점인 행복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랑의 언어’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연인들이 서로의 눈빛만으로도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이미 주고받은 사랑의 언어가 작용하여 깊은 내면의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언어는 기본적으로 ‘나눔’을 전제로 하고 있다. 마음을 나누는 아름다운 도구가 말이고 언어다. 인간은 지구상에서 언어를 구사하는 유일한 종(種)인 동시에 사용하는 언어에 의해 그룹과 품격이 구분되는 종이기도 하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언어와 아이디어”라는 대사가 있다.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변화는 우리의 언어습관에 달려있다.

말에 대한 수많은 예시가 ‘말씀’의 보고(寶庫)인 성경에 가장 많이 있다는 것도 재밌다.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마땅치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마태10,12-13)” “매에 맞으면 자국이 남지만, 혀에 맞으면 뼈가 부러진다. (집회28,17)”

부메랑이 돼서 돌아오는 언어적 특성 때문에 언어는 흔히 칼의 양 날에 비유되곤 한다.

말의 출발점은 생각이다. 막말, 빈말, 독설은 그 자체로 독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바로 상대방에게 내상을 입히게 된다. 그리고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마음이 다치면 입도 닫힌다.

요즘 횡행하는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망언’, ‘막말’, ‘갑질 언사’로 우리 사회가 냉소적이고 증오심이 가득한 말의 독소에 상처를 입고 그 증상을 경험하고 있다.

‘품위(品位)’라는 말의 한자어 ‘품(品)’ 자를 보자. 입구(口)자 세 개가 모여서 이뤄진 글자다.

이슬람 속담에 말을 하기 전 스스로 세 가지 문(口)을 생각해 보고 말을 하라는 속담이 있다 한다.

첫 번째 문은 하려고 하는 말이 ‘진실한가’에 대한 질문이다. 두 번째 문은 이 말이 과연 ‘필요한가’에 대한 반문이다. 세 번째가 가장 중요하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말인가’에 대한 성찰이다.

언다필실(言多必失)-‘말이 많으면 반드시 실수하게 된다’, 구시화문(口是禍門)-‘입(口)이 곧 화를 불러오는 문’이니 말을 가려서 조심하라는 사자성어다.

말에 대한 화룡점정(畵龍點睛)은 우리나라 속담이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미소 띤 얼굴로, 서로의 얘기를 경청하며, 깊이 있는 대화를, 오감으로 즐길 수 있는 사회를 기대해도 될까. 우리 사회, 말부터 다시 배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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