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희 논설위원 / 강동대 교수

이동희 논설위원 / 강동대 교수

(동양일보) 세상의 흐름은 매우 빠르고, 빠른 변화에 대처하는 것은 쉽지 않다. 경제의 흐름도 크지만 사회 구조의 흐름은 더욱 크게 변화한다. 고려시대 모계사회에서 조선시대 부계사회 그리고 이제는 고려시대로 순환하는 듯하다. 요즘 세상에 남녀차이는 있을 수 있어도 남녀차별은 없다. 차이의 다름은 인정하지만 차별은 인간적 측면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남자로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규정되어 있지는 않으나, 과거시대에는 남자가 할 일과 여자가 할 일이 따로 정해져 있었다. 남자가 금기시해야 하는 일 중 하나가 부엌 출입이다. 어떤 의미로 부엌 출입을 금기시 하였는지는 남녀 차별이라기보다 남녀구별이라 생각한다. 조선시대 부엌의 살림살이와 곳간의 키 관리는 엄청난 권세였다. 세상의 변화만큼 여자의 금기사항도 과거에 비하여 많이 없어졌다. 군대, 경찰, 운전, 법조계, 택시운전, 대형 혹은 특수차 등등 차별이 있는 분야를 찾기가 어렵다. 더불어 남자가 할 수 없는 일도 없다. 임신과 출산도 부부가 함께하는 세상이다. 그래서 지금은 육아휴직, 가사노동, 야간 당직 등의 분야에서도 뚜렷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가사노동에 있어서 남자들이 부족한 부분이 어디일까? 먹방 프로그램과 단순하고 간편한 조리 및 식문화의 변화에 의해 준비된 요리를 즐기는 남자들도 많아지고 있다. 함께 조리해서 맛있게 먹는 행복은 매우 크며, 더욱이 가족에게 맛난 음식을 제공하는 것은 더욱 커다란 행복이다. 그런데 먹고 나서 하는 일 중에 꺼리는 것이 설거지 이다. 배도 부르고 귀찮기도 하고 설거지는 게임을 해서라고 피하고 싶어 한다. 집안청소 빨래 등에는 대체기계가 있고 설거지에도 있다. 일회용품, 혹은 식기세척기 혹은 건조기 등을 활용하면 된다. 하지만 환경보호 혹은 건강측면에서 사람이 해야 믿을 수 있다. 사람의 손은 매우 섬세하고 정확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설거지에 대하여 논해 보자.

설거지란 무엇인가? 먹고 난 뒤의 그릇을 씻어 정리하는 일로 뒷설거지라고도 하며, 살림살이가 규모 있는 집일수록 잔치 설거지가 매서운 법이라는 말이 있다. 설거지는 설겆다라는 동사에서 나온 말이나, 설겆다라는 말이 없어지면서 설겆다에서 나온 설겆이도 사용하지 않고 설거지를 표준어로 한다. 관련어로 비설거지는 비가 오려고 하거나 올 때, 비에 맞으면 안 되는 물건을 치우거나 덮는 일을 말한다. 설거지는 한글맞춤법 제6항에 따르면, ㄷ, ㅌ 받침 뒤에 종속적 관계를 가진 -이나 -히가 올 때 그 ㄷ, ㅌ이 ㅈ, ㅊ으로 소리 나더라도 ㄷ, ㅌ으로 적는 규정이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설걷이가 옳을 듯하나, 이 단어의 경우는 설거지로 쓴다. 1988년 이전에는 설겆이가 표준어였다. 제6항이 적용된 예가 맏이, 걷히다, 낱낱이, 붙이다 등이 있다.

한국의 부엌 조리대는 높이가 작은 키를 기준으로 되어 있어 키가 크면 설거지 할 때 불편하다. 부엌에 따라 목을 숙이거나 심하면 허리를 숙이고 웅크려서 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신체역학을 이용해 허리를 숙이는 대신 다리를 약간 벌리고 하면 된다. 설거지와 관련한 노하우 몇 가지 소개하면, 첫째 설거지를 자주하고 많다면 얇은 면장갑 또는 예식장갑을 고무장갑 안에 끼고 하는 것이 좋다. 둘째 편하게 하고 싶다면 물에 불려놓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한다. 셋째는 그릇 파손이 빈번하다면 순발력이 아닌 그릇 잡는 방법이 문제이고, 물과 시간을 줄이고 싶다면 설거지할 것을 물 밖에 전부 꺼내놓고 닦은 후 세제가 묻은 상태로 물통에 집어넣었다가 꺼내서 흐르는 물에 헹군다. 그리고 바깥쪽 보다는 음식을 담는 안쪽을 깨끗이 닦고 기름때가 많이 묻은 식기(삼겹살이나 생선을 구운 프라이팬 등)는 키친타올 등 휴지로 먼저 닦아내고 설거지한다. 밝은 곳에서 하며 칼이나 가위 등 위험한 물건은 따로 닦는다.

설거지와 관련된 책으로 한 상의 남녀가 동거에서 결혼에 이르기까지 고군분투한 기록을 집필한 책이 있는데, 이는 20대 후반에서 결혼까지 남자 친구를 만나고 실생활의 설거지 등의 힘든 점을 다룬 책이다. 실생활은 연애가 아닌 현실로 작은 것이 다툼으로 변화되며 결혼생활은 사랑과 이해가 필요함을 담았다. 실생활은 환상이 아니며 집 안과 밖의 이면적 생활 그리고 사회와 연관된 가정생활 등은 많은 고민이 따른다. 작지만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설거지는 일상 속 일거리로 우리의 행복한 삶을 이루는 중요한 팩트(Fact)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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