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민 청주시흥덕구 환경지도팀장

김태민 <청주시흥덕구 환경지도팀장>

(동양일보) 새벽 5시 눈을 떠 제일 먼저 어머니 방문을 연다. 몇 년째 치매를 앓고 계신 어머니의 잠자리를 살피기 위해서다. 어머니는 아들이 문을 열었는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푸우, 푸우 연거푸 입 바람을 내시면서 주무신다. 잠에 빠진 늙은 공주처럼….

어머니와 한 집에 살기 시작한 건 4년 전부터. 어머니는 교통사고를 당하시고 뇌경색이 오면서 치매가 시작됐다.

어느 날 어머니께 “내가 누구예요?” 물었더니 “몰라.”하신다. “배고파요?”해도 “몰라.”, “그럼, 뭐 하고 싶은 게 있어요?” “몰라.”

물어보는 것마다 “몰라”를 연신 답하신다. 어머니는 “몰라” 병에 걸리셨다.

오전 8시 아내가 어머니를 깨운다. “일어나세요! 이순복 씨, 일어나세요!”

문을 쾅쾅 두드린다. 이젠 일상이 돼버린 어머니 깨우는 소리! 처음 이 상황을 보고 참 많이 낙담을 했었다. 무슨 며느리가 저리 쌀쌀맞나 정이 없는 사람도 저러지는 않겠네. 너무 한 거 아니야, 어머니한테.

애꿎은 아내에게 화풀이하기도 했다. 내가 어머니를 얼마나 위하는지 옆에서 20여 년을 살면서 봐 왔을 건데 어떻게 저럴 수 있어. 결혼 잘못했네. 짝을 잘못 만났어. 후회하고 슬펐다.

어머니는 며느리가 차려주는 국에 만 밥 한 그릇을 받으시고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한 숟가락, 한 숟가락 힘겹게 떠드신다. 옆에 앉은 며느리는 빨리빨리 드시라고 다그친다.

그러지 말았으면 하는 맘 가득한데 처음 약속한 것도 있고, 어머니는 아들을 보면 더 어리광을 부리다 보니 나는 식사 때는 방에서 기다린다.

어머니는 아침마다 노인요양시설인 주간보호센터로 가신다.

처음 어머니를 집에 모시기 전 집 근처 소형 아파트를 임대해 혼자 계실 수 있도록 한 적이 있다. 아내가 매일 어머니 집을 들락날락했다. 어느 날부터 아파트 문을 열지 못해 들어가지 못하는 날이 찾아왔다. 마음고생을 하는 나를 보고 아내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우리 집으로 모시자. 대신 조건이 있다.

아내는 어머니를 집으로 모시는 대신 자기가 하는 일에 절대 토를 달지 말아달라고 했다. 눈물이 나올 만큼 고마웠다. 이때부터 어머니와의 동거가 시작됐다. 그 사이 아내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 이때까지만 해도 자랑스러운 아내요 며느리였다.

그런 아내가 아침마다 문을 쾅쾅 두드리면서 “이순복 할머니, 일어나세요!”를 외친다.

문을 나서면 빨리빨리 걸으라고 밀기도 하고 끌기도 한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이런 행동들. 뒤늦게 알게 됐다. 어머니는 날씨가 흐리거나 치매환자로 대하거나 어리광 부리듯 하면 증세가 더 심해지신다는 것을.

몇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들인 나는 정작 어머니한테 해드리는 일이 없다. 퇴근하면서 어머니 방문을 열어보고 잘 주무시나 보는 것이 전부다. 내 욕심만으로 어머니를 돌볼 수 없는 현실. 아내의 고마움이 새삼 느껴지곤 한다.

어머니는 틈만 나면 주무신다. 무엇을 달라거나 요구하지도 않으시고.

마지막 순간에라도 잠깐 정신이 돌아와 “아들아, 며늘 아가야! 그동안 고생 많았다. 고맙다. 너희 덕분에 살다 간다.”라고 해 주신다면 얼마나 고마울까 생각을 해 본다.

오늘도 편히 주무시는 어머니를 그저 바라만 본다. 온갖 애정으로 낳고 키워낸 아들놈의 역할이 고작 이런 것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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