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동양일보)

“어머니, 호미 어따 두셨어유?” “헛간에 있지 않느냐?” “없는데유.” “그려, 내 어제 썼는디 거기 잘 찾아봐!” “암만 찾어두 없어유. 혹 또 밭에다 두구 오신 거 아녀유.” “글쎄다, 그랬는가?” 며느린 채마밭으로 내닫는다. 그렇다면 십중팔구 거기 있을 거였다.

시어머닌 얼마 전부터 정신이 흐려지셨다. 연세가 90중반까지만 해도, 귀도 밝고 눈도 밝고 정신도 또렷했던 양반이 올해 들어 귀가 잘 안 들린다고 해서 병원엘 갔다. “연세가 많으시군요. 이제 연만하셔서 그렇습니다. 별 이상은 없으십니다.” 그랬는데 여름 들어 부쩍 더 하셔서 큰소리를 해야 들으신다. “눈은 어떠셔유?” “아직꺼정은 잘 보인다.” 그런데 뭘 자꾸 잊는 게 느셨다. 작년까지만 해도 연세에 비해 총기가 또렷하셔서 동네 집집의 일을 훤히 꿰뚫으셨다. “저 욱이 할매는 내보다 여덟 살 아래니께 시방 여든 여덟이제. 그니는 내 아직 아낙 적에 이 동네루 시집왔는디 인물이 곱상했제. 근데 그 욱이 할배가 젊었을 때나 늙어서나 술이 고래더니만 결국은 끝팔년엔 그 술 땜에 갔는디, 그래 그 할배 땜에 하두 속을 끓이구 안달을 해서 저리 바짝 얼굴하며 몸댕이가 주름투생이고 오그러들었지만서두, 그래두 시방은 아들딸들이 잘 받들고 손주들이 다 잘 돼서 호강하는 것이제.” “그느무 술, 그 술 땜에 집안들이 편치 않은 집들이 많았지유?” “그랬지. 저 모랭이집 할매 말이다. 그 할매는 올해 여든으루 들어섰는디 택호가 살만이댁여.” “그 살만이댁 할머니 아녀유?” “그래, 살만이라는 데서 시집와서 그렇제.” “우스갯소리지만, 친정동네가 실만이니께 친정집두 살만했겄네유.”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니 말마따나 그 친정집은 잘 살었제. 그집 셋째 딸인디 시집오기 전에는 호강두 하구 인물두 번드르르했단다.” “그런데유?” “그런디 그 신랑이 술 탁보여. 내 시집오니께 벌써 술꾼이라구 별호가 나 있더구만.” “근데 혼인하구두 그렇게 술을 많이 했어유?” “그랬지 그때만 해두 어디 신랑신부 감들이 어디 맞선들을 보고 정했는감 그저 어른들찌리 보지도 않고 정했지. 집안 따지고 당사자들 됨됨이 묻고 가문의 내력 보는 건 한다는 양반집들이나 그리 했지 여염집에선 어디 그런거저런거 따졌느냐. 그저 중매쟁이 말만 듣고 하거나 어른들찌리 약주판 벌이고 얘기 주고받다가 정해버리곤 했지. 그래 말이 있지 않느냐. 여자팔자는 뒤웅박팔자라고. 뒤웅박 알지, 박을 반으로 쪼개지 않고 꼭지부분을 둥근 채로 구멍만 뚫어서 속을 파낸 것 말이다. 이걸 구멍 부근에 끈을 달아 두레박 같이 썼는데, 그걸 조종하는 사람에 따라 이리저리 엎어졌다 제껴졌다 한다고 해서, 여자들의 팔자는 신랑을 잘 만나고 못 만나고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 아니냐?” “그럼 살만이 할머닌 살만이양반을 잘못 만난 거네유.” “첨에는 그랬지. 그렇지만 살아가면서 안에서 잘 다스려 애들 장성하면서는 술양을 줄이고 해서 오년 전 그 양반이 갈 때까지는 두 내외 금술이 좋았제.”

이 외에도 동네 누구네 구구네 의 옛일이라면, 그리고 살다가 나가 있는 집의 가족관계 등을 훤히 알고 있던 시어머닌데 백수를 일 년 앞두고 부터는 자꾸 잊는 게 많으시다. 그러면서도 밭에서 사신다. 잡풀 매는 일이며 콩팥 심고 깨 떠는 것도 하신다. 그렇게 며느리가 극구 말리는데도 막무가내시다. “여보, 남들은 그 연세 되면 돌아가시거나 똥오줌 받아내고 딴 소릴 자꾸 한다는데, 어머니는 그래도 편찮으신 데 없으시고 아직도 일을 하시니 우리가 복 받은겨. 너무 심하게 참견 말고 어머니 하시는 대로 가만히 있읍시다. 그게 효도지 딴 게 효도여?” 아닌 게 아니라 그렇다. 그래서 시어머니가 밭 매시던 곳에 가보면 거기 끝머리 쪽에 두고 온 호미가 있다. 그런데 그게 모지랑이가 된 호미다. 오래 써서 끝이 닳아 떨어져서 그렇다. 그게 손에 익고 가벼워서란다. 아직도 살강에 있는, 오랜 동안 솥의 누룽지를 긁는 데 쓰느라 닳아서 그야말로 달창난 숟가락은 ‘달챙이’라 하면서, 논밭에서 쓰느라 또는 마당을 쓰는 데 쓰느라, 끝이 닳아빠진 연장이나 빗자루는 모지랑이 삽, 모지랑이 빗자루 라 하신다.

오늘도 며느리는 이 검소한 시어머니가 밭 매던 데로 가 모지랑이가 된 호미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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