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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재산을 지키려고 아내 마리아를 버리다
풍향계/ 재산을 지키려고 아내 마리아를 버리다
  • 동양일보
  • 승인 2019.08.12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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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우 시인
이석우 시인

(동양일보)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는 “바다의 사령관”으로 불릴 만큼 해상 전략에 뛰어난 군인이었다. 그의 뛰어난 지략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의 신망을 얻어내는 데 많은 시간을 요구하지 않았다.

고니시는 어느 날 은밀하게 불려갔다. 야망으로 가득한 풍신수길은 재능이 넘치고 의리와 기백으로 충만한 고니시를 볼 때마다 그리던 꿈 한 조각이 있었는데, 드디어 그 꿈조각 보자기를 풀어 놓는 것이었다. 그것은 명나라 정복에 대한 야욕의 추상화였다.

풍신수길은 피 한방을 묻히지 않고 조선을 손에 넣고 싶었다. 그는 ‘명나라를 치러 갈 테니 길 좀 빌려달라’는 고양이 무덤 앞에 읊조리는 추모사 같은 구실을 꺼내놓고 절묘한 책략이라며 수선을 떨어댔다. 평소 거절을 잘못하던 천주교 신자인 고니시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조선을 회유하러 가는데 대마도주 소요토시(宗義智) 까지 대동하라는 것이었다.

그 밑그림으로 자신의 딸 마리아를 대마도주와 혼인시키라는 주문까지 덤으로 안고 돌아왔다. 정략결혼이 성사되어 1591년 3월 드디어 결혼 행진곡이 새로 올라온 나뭇잎을 행복하게 흔들었다.

조선 침략의 행진곡이 이렇게 울리고 있을 때, 조정은 동인과 서인으로 패를 갈라놓고 싸움질에 몰두하였다. 이듬해 종의지도 부인의 청으로 ‘타리오’라는 세례명의 천주교 신자가 된다.

종의지는 양손에 떡을 쥔다. 풍신수길에 발탁되고 소서행장의 사위까지 되었으니 말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종의지는 장인인 소서행장의 부대에 편성되었다. 이 1만 8천의‘사위와 장인부대’는 1592년 6월 15일 평양성을 함락시켰으나 명나라 이여송의 참전으로 평양성에 불을 놓고 남으로 후퇴하였다.

풍신수길의 운명은 그의 야망을 다 충족시켜주지 못하였다. 1598년 부하들에게 ‘내가 죽은 다음에 어린 자식을 보필해 달라.’며 서명까지 받아놓고 눈을 감았다.

현재의 아베 수상이 가장 존경하는 역사인물이라는 풍신수길은 자신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하여 자신의 목숨을 지우고 말았다. 전쟁에 천주교까지 끌어들이던 ‘사위와 장인부대’는 노량진해전이 벌어지는 틈을 타서 재빠르게 대마도와 일본으로 도망질하였다.

일본열도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풍신수길의 어린 아들을 밀어내고 전국을 주도하고 있었다. 지상에서 가장 치사하고 더러운 ‘세끼가하라 전투’가 벌어진다. 이기는 편에 줄을 서기 위해서 배반을 밥 먹듯 하였다. 병사들은 진격 신호가 났어도 불리할 듯싶으며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가문을 보존하려고 동생은 신군부에 형은 수구파에 가담하기도 하였다. 초반에 불리하면 더 불리해지게 될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덕천가강이 승리하여 88개 다이묘를 멸하고 총 634만 석의 영지를 몰수하였다. 당시 대마도는 조선애서 7 만석. 일본에서 1 만석, 대마도 자체에서 2 만석이 조달되는 10 만석지기의 영지로 분류되고 있었다.

종의지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장인인 소서행장이 전세가 불리한 것을 알면서도 의리를 내세워 참전하여 패한 때문이였다. 천주교 신자였으므로 할복자살 대신 교수형을 자청하였다. 종의지는 전투가 벌어질 때 군사만 조금 보내는 척하고 직접 참전하지 않았었다. 임진왜란 당시 참가했던 대마도 무사 5천은 2천밖에 돌아오지 못한 상황에서 철군하던 본토 병사들이 대마도를 다 털어가 버렸다.

강한 자의 눈치만 보며 평생을 살았던 종의지는 망설여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가차 없이 사랑하는 아내 마리아와 이혼하는 길을 선택하였다.

쫓겨난 마리아는 5년 후 나가사끼에서 눈을 감았다. 종의지는 소서행장의 딸까지 버림으로써 덕천가강의 노여움을 피하고 생명과 재산을 유지하게 되었다.

대마도 8번궁신사 왼쪽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눈물겨운 신사가 있다. 이것이 바로 코니시 마리아 부인과 죽은 아들을 제사하는 곳이다. 1619년 두 신사를“이마미야·와카미야신사”로 합사하였다.

그리하여 대마도주의 악행이 지워졌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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