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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가는 ‘독립운동 광복 영웅’
잊혀져가는 ‘독립운동 광복 영웅’
  • 이도근
  • 승인 2019.08.13 1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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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74돌 광복절
74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을 방문한 학생들이 무궁화와 태극기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충청권 생존 애국지사. 왼쪽부터 정완진 지사, 이일남 지사, 오상근 지사.

(동양일보 이도근 기자) -생존 독립운동가 전국 32명 뿐…충청권엔 정완진·이일남·오상근 지사 등 3명

-일제 저항 희생 유공자 15만명 추산되나 1만5000여명만 공식 유공자 인정돼

-생존 애국지사 평균 나이 95.1세…“한 분이라도 더” 독립유공자 발굴 나서야



지난 8일 일제강점기 항일결사 일심회(一心會) 활동을 한 부산의 마지막 애국지사 김병길(96) 선생이 별세했다. 김 선생은 동지 11명과 일심회를 조직, 연합군 상륙에 맞춰 무장봉기 계획을 진행하다 발각돼 광복 때까지 옥고를 치렀다.

지난 2월 35명이던 국내 생존 항일 애국지사는 김 선생의 작고로 32명이 됐다. 광복 74주년인 올해도 김 선생 등 3명, 일제에 맞서 조국을 되찾고자 했던 독립운동의 산 증인들이 하나 둘 세상을 뜨고 있다. 생존 독립운동가의 평균 나이도 어느덧 95.1세에 달한다.

충청권의 경우 현재 생존하는 애국지사는 3명이다. 대전은 정완진(93·유성구) 지사, 충남은 이일남(95·금산) 지사, 충북은 오상근(96·진천) 지사가 거주하고 있다.

정완진 지사는 대구상업학교 재학 중이던 1943년 4월께 항일학생결사 태극단(太極團)에서 활약했다. 태극단은 구체적 투쟁방안에 대해 협의하고 조직을 정비해 최고의결기관으로 간부회의를 구성했으며, 군사학연구와 군사관계서적의 번역, 글라이더와 폭발물 제조에 대한 연구도 추진했다. 그러나 1943년 5월 배신자의 밀고로 태극단원은 모두 검거됐다. 정 지사도 이때 수업 도중 다른 단원들과 함께 일제에 붙잡혀 고문과 옥고를 치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이일남 지사는 전주사범학교 재학 중 일본인 교장의 노골적인 민족차별교육에 분개해 1942년 6월 비밀결사단체인 ‘우리회’를 조직하고 민족정신을 고취하며 항일활동을 펼쳤다. 이 지사는 만주에서 동지들을 규합, 독립군과 접선을 시도했으며, 이후 독립자금 조달을 목적으로 충남 금산사방관리소 인부로 취업했다가 1945년 1월 일본 헌병대에 발각돼 체포됐다. 그해 8월 17일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전주형무소에 수감됐다가 광복으로 출옥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진천 출신의 오상근 지사는 70여년 전 중국 충칭(重慶) 임시정부의 광복군으로 활동했다. 18세 때 일본군에 붙잡힌 오 지사는 중국 북지(北支·지금의 화베이)에서 가혹한 훈련을 받던 중 탈출했다. 2년가량 중국을 떠돌다가 1944년 12월 충칭에 도착한 오 지사는 광복군 총사령부 경위대 소속으로 충칭에 있는 토교대(土橋隊)에 배속돼 임시정부 요인과 그 가족들의 안전에 대해 경호를 하는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광복 후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 오 지사는 고향 진천과 인근 음성에서 30년간 공직생활을 했으며, 광복회 활동에도 힘을 쏟았다. 1963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이들은 모두 애국심 하나로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항일운동과 광복군으로 활약했다. 조국 광복을 위해 젊음을 바친 대가로 고문과 옥고 등 아픔을 겪었으나 이들에 대한 관심은 3.1절과 6.25전쟁일, 광복절 등에만 집중돼 평소의 관심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독립유공자 예우 문제 역시 유공자 발굴부터 서훈 전달, 유공자 간 형평성 논란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올해 광복절 포상을 받는 178명을 포함해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사실을 공식 인정받은 독립유공자는 1만5689명(여성 444명)이다. 그러나 을미의병이 일어난 1895년부터 1945년 광복 전까지 독립운동을 하다 고초를 겪은 이들이 15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광복 70여년이 지나며 대상자의 90% 이상은 자료부족 등을 이유로 조국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쳤던 희생의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독립운동 행적을 인정받았어도 당사자나 유족에게 서훈을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도 5000여명에 달한다. 뒤늦게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지사들이 상당수여서 3분의 1가량이 유족 찾기에 실패, 서훈을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진 않았다. 독립운동 당시 상황을 증언할 당사자나 유족을 더 떠나보내기 전에 유공자 발굴과 서훈 전달 작업을 하지 않으면 이들에 대한 예우는 영원히 미완으로 남게 된다.

국가보훈처는 지난해부터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본적지 현지 조사를 진행 중이다. 단 한명의 독립유공자 후손이라도 적극적으로 발굴해 국가의 책임을 다할 계획이다.

독립유공자 후손의 경우 ‘공훈 전자 사료관’에 접속해 국가에 등록된 독립유공자의 명단을 확인할 수 있으며, 제적부와 족보 등을 보훈처로 신청하면 훈장을 전수받을 수 있다. 이도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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