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동양일보 김영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개싸움은 우리가 한다, 정부는 정공법으로 가라”

지난 6일 서울 중구청은 서울 중심도로에 태극기와 함께 ‘NO JAPAN’ 깃발을 설치했다. 을지로와 청계천 등 22개 거리 가로등에 1100개의 깃발을 내걸었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중구에서 일본의 부당함과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겠다는 취지였다.

그런 깃발들은 하루도 안돼 내려왔다. 지자체가 나서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게 옳으냐, 부작용만 확산하는 게 아니냐는 시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쳤다. 중구청이 제작한 ’NO JAPAN’ 깃발을 패러디해 ‘나대지 말라, 국민이 다 알아서 한다’는 마크도 등장했다.

일본 불매운동이 일부 정치권에서 말하는 것처럼 감정적 반일이라거나 또는 정치적 도구로 이용돼서는 안된다는 국민들의 준엄한 꾸짖임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국민적 집단 이성이 엄연한데도 분위기를 파악치 못한 사람들의 망언이 툭 하면 터져 안타깝기 그지 없다.

“아베는 문재인 면상을 주먹으로 치지 않은 것만 해도 대단한 지도자다”, “베네수엘라의 여자들은 단돈 7달러에 몸을 팔고 있고 곧 우리나라도 그 꼴이 날 것이다”

해괴망측한 말이 한 기업인을 통해 전해졌다. 한국콜마 윤동한 회장이 직원 700여명이 참석한 월례조회에서 이런 내용의 극우 유투브 영상을 틀게 했다. 여론의 질타가 거세지자 그는 결국 회장자리에서 물러났다.

어디 이 뿐인가. 엄마부대 주옥순 대표라는 사람은 2016년 한·일 위안부 합의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내 딸이 위안부 할머니와 같은 피해를 당했더라도 일본을 용서할 것이다”고 ‘통 크게’ 말했다. 지난 1일엔 일본대사관 앞에서 “아베 수상님, 저희의 지도자가 무력해서, 무지해서 한·일 관계의 그 모든 것을 파기한 것에 대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라고 말하면서 “일본 파이팅”을 외쳤다. 말하는 게 아깝다.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이고 누구의 엄마인지 묻고 싶다. 제발 엄마를 팔아 신성한 모성을 욕되게 하지 말라.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뉴라이트의 대표적 인사인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는 “위안부 성 노예는 없었다”, “일제가 쌀을 수탈해간 것이 아니라 쌀을 수출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등을 부정했다.

국민 반일 분위기에 편승한 일부 정치인과 지자체들의 대응도 눈총을 사고 있다. 최재성 더불어민주당일본경제침략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은 방사능 물질이 기준보다 4배 가량 검출된 도쿄를 포함해 여행금지구역을 확대해야 한다고 했고, 신동근 같은 당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간사는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한 도쿄올림픽 보이콧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역시 국민들로부터 지지는커녕 감정적 대응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일본 교수와 전 외교관, 변호사, 언론인 둥 양심적 지식인들이 “한국이 적이냐”고 묻고 아베 정부에 수출규제철회를 촉구했다. 한국은 적이 아니라 동아시아 평화와 번영을 함께 만들어 갈 소중한 이웃이라고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일본은 적이냐. 한·일 두 나라 사이를 갈라놓은 사람은 아베요, 한국과 일본은 비록 아픈 과거는 있지만 영원한 동반자적 관계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질서 있는 극일 운동’이지 감정을 앞세운 ‘무작정 반일’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 극일을 위해선 대오단일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크지만 반정부, 반정권으로 편승하려는 의도도 경계해야 한다.

보름 전, ‘충북3.1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범도민위원회’는 청주 충북도청 담장에 일본을 규탄하는 현수막 수십여장을 내걸었다. 일본의 경제보복조치를 규탄하고 불매운동을 독려하는 내용이다. 열흘 후엔 그 위에 십수장의 현수막이 자리했다. 충북자유민주시민연합이라는 단체가 게시한 ‘문재인발 한·일갈등 국민만 죽어난다’, ‘일본과 싸워야 총선에 유리하다고? 더불어민주당은 해산하라’는 등의 현 정권 비난 내용이다.

시민들은 일본 극우세력 앞에서 하나로 뭉쳐도 시원찮을 판에 엉뚱하게 관심을 분산시키려는 저의를 의심했다. 아무리 표현의 자유가 있다지만 내부갈등을 일으켜 일본 극우세력에 대항할 힘을 빼려는 술수는 아닌 지, 이런 일이 왜 하필 우리 고장 청주에서 일어났는지, 생각할 수록 꺼림칙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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