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영섭 인성교육칼럼니스트

반영섭/ 인성교육칼럼니스트

(동양일보) 에스키모인들은 늑대를 사냥할 때 얼음판에 구멍을 뚫고 그 구멍에 피를 묻힌 칼을 거꾸로 세워놓는다. 그러면 칼날은 시릴 정도로 차가워진다. 늑대들은 그 피 냄새를 맡고 칼날에 묻은 피를 계속 핥는다. 그러면 차가운 칼날 때문에 혀에 감각이 없어지고 감각이 없어진 혀는 칼날에 계속 베인다. 아무것도 모르는 늑대들은 자신의 피인지도 모르고 칼날을 계속 핥는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피를 계속 핥아 나가다가 혈액 부족으로 죽는다. 이런 방법으로 에스키모인은 손쉽게 늑대를 사냥한다. 이 이야기의 출처는 거의 명시되어 있지 않은데 현실세태에 빗댄 우화라고도 한다. 피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늑대가 우리들 자신은 아닐까? 우리가 돈에 대한 유혹, 쾌락, 명예, 자식의 기대감, 음식에 대한 유혹……등등에 얼마나 많이 노출된 세상을 살아가는가. 자신도 모르게 유혹에 휩쓸리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 번 되짚어 보아야 한다. 만약 늑대가 자신의 혀를 베어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자신의 몸에서 피가 빠져 나감을 인지했더라면 그렇게 허망하게 죽어 갔을까? 세상은 끊임없이 남을 유혹하여 자신의 유혹을 만끽하려 변화하고 있다. 변화에 냉철하게 대처하지 않는 다면 허망하게 죽어가는 늑대의 처지가 될 것 이다. 유혹은 마약 일수도 있고, 그보다 조금 익숙한 담배, 술, 더 나아가서는 태만 등이 아닐까. 내가 잠시 편하다고, 아니면 즐겁다고 행하던 것들이 결국 나 자신을 낭떠러지로 몰아넣는 것이라면 기꺼이 절제를 해야 하지 않을까? 또한 집착에 빠진 사람들은 그것으로 인한 자신의 행동이 점차 자신을 좀 먹어가고 더 곤란지경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어렵다. 우리 주변에서도 집착에 빠져 무의식중에 자신을 위험한 상황으로 이끌며 그릇되게 살아가고 있는 여러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다. 먹는 것, 입는 것, 돈, 섹스, 도박, 담배, 술, 일, 쇼핑, 게임, 자식 등 그 어떤 것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이면에는 그 사람의 집착이 있다. 그 사람들은 집착으로 인하여 그 두려움을 커버하기 위한 욕망을 갖게 되며, 그 욕망은 다시 집착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것들이 그 사람의 태도와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참된 삶을 찾아가는 첫걸음은 몸과 마음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이 어떤 욕망과 집착에 사로잡혀 있는지 아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존중해야 한다. 그 과정에는 어느 정도의 인내와 연민이 필요하다. 몸과 마음은 늘 함께 하기 때문에 각각을 위한 어떤 노력들을 통해 몸과 마음이 동시에 회복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자신의 마음상태와 관련된다. 감정은 내면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자신의 중요한 부분이다. 자신의 감정을 존중하고 그것에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며,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진정한 삶은 진실한 자신이 되려는 의지와 더불어 몸과 마음의 의지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들을 경청하며 조화를 추구함으로써 가능하다. 또한 그렇게 얻은 조화로움은 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가족, 이웃, 자연과 더불어 존재해야 한다.  21세기, 하루가 다르게 변화되어 가는 디지털시대에 살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타성에 젖어 있는 자신에게 현실에서 변화를 주어야 한다. 그래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빌 게이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힘이 센 강자도 아니고, 두뇌가 뛰어난 천재도 아니다. 날마다 새롭게 변했을 뿐이다. 그것이 나의 성공 비결이다.” 그렇다. 빌게이츠도 또한 잡스도 변화했기에 세상을 바꾸었다. ‘Change(변화)’의 g를 c로 바꿔보라. ‘Chance(기회)’가 된다."라고 말했다. ‘만물유전(萬物流轉)' 즉 모든 것은 변한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은 건 단 하나도 없다. 그래서 변화는 위기이자, 바로 기회이다. 변화 속에 진짜 기회가 숨어 있다. 성공은 얼마나 예측을 잘하느냐가 아니라, 변화에 얼마나 대처를 잘하느냐에 달려 있다. 에스키모인들의 늑대사냥이야기가 전설이든 우화이든 그 누가 지어낸 재미있는 이야기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유혹과 쓸데없는 집착에 경종을 울려 주는 데 있다. 인간이 죄악의 유혹에 빠질 때 점진적이고 치명적이면서도 목숨을 잃기까지 결코 그 유혹의 결과를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고 둔하며 나약한 점을 경계하자는 것이다. 또한 사람이 참된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어느 순간부터 매너리즘(mannerism)에 빠져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데 둔감해지고 판에 박힌 일상을 즐기다가 결국은 스스로 자신을 망쳐가는 모습을 빗댄 것이다. 죄악이나 매너리즘이나 그 유혹의 달콤함은 사람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피 묻은 칼날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