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유 영 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동양일보]국가 보훈처가 지정한 우리나라 독립운동가의 동상은 전국에 93개가 있다. 그 가운데 여성동상은 단 7개. 7개중에도 4개는 유관순 동상이고 나머지가 김마리아, 윤희순, 박차정 3분의 동상이다. 내년에 서문형무소에 유관순 동상을 세울 예정이라니까 여성독립운동가의 동상은 8개가 되고 유관순 열사 동상은 5개가 된다. 여성 동상은 여전히 4분 뿐이다.

1919년 3.1운동 피검자 중에는 여교사와 여학생이 218명이었다. 1919년 당시 여자들의 취학률이 남자들의 100분의 1 수준도 안 되는 비율에 비하면 이 숫자는 대단히 높은 수치이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은 여성독립운동가로 ‘유관순’ 한 사람만 기억할까. 그것은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등장하는 30여 명의 독립운동가 중 여성은 유관순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나라를 잃은 슬픔을 느끼는 일에 성별이 다르지 않듯, 나라를 되찾고 싶은 열망 역시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없음은 당연하다. 그러나 남성중심사회에서 우리 사회는 여성독립운동가를 조명하는 일에 소홀했다. 올해 정부가 인정한 독립유공자 수는 모두 1만5513명, 그 가운데 여성은 7월 현재 434명으로 2.8%에 불과하다.

3.1 운동은 여성들이 처음으로 독립된 주체로서 봉기한 혁명이다. 국채보상운동이나 의병투쟁 등에 소수의 여성이 참여한 적은 있으나 자주적으로, 집단적으로 수많은 여성들이 역사현장에 참여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여성들의 활동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인도의 초대 수상이 된 네루가 항영 독립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갇힌 뒤, 딸에게 “너도 조선 소녀들을 본받으라”고 편지를 썼을까.

그러나 그동안 우리 사회는 여성독립운동가를 조명하는 일에 소홀했다. 그것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90년대 이전에는 남성위주의 보훈정책을 펴왔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독립운동가 공적을 따질 때 주로 기록이나 직책에 따라 공훈이 가려지는데 여성은 앞장서서 투쟁하기 보다는 독립운동가의 부인이나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조력자’정도로 평가됐기 때문이다. 물론 독립운동 현장에서 남성들과 똑같이 총칼을 들고 싸운 여성들도 있지만, 기록에 남지 않은 대다수의 여성들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남편과 함께 현장 곳곳에서 손발이 되고 눈과 귀가 되었던 부인과 딸, 며느리들이었다. 또 독립운동가 남편을 뒷바라지하면서 남아있는 가족을 책임지고 돌본 ‘가장’이기도 했다.

독립운동 조직 내에서 밥을 하거나, 군자금을 모으거나, 비밀통신을 연락하거나 하는 여성의 역할 자체가 보조적인 것으로 취급돼 기록이 남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따라서 현재의 독립운동의 의미나 평가 기준은 남성의 시각에서 구성된 것이고 여성의 시각이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반쪽짜리 기록일 수 밖에 없다.

1919년 2월 여성들이 발표한 ‘대한독립여자선언서’는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3.1독립선언서’와 달라서 신선하다. 이 자료는 조선총독부의 문건과, 일본 외무성 자료에 남아있고, 신한민보에도 기사화됐던 것으로 김인종 김숙경 김오경 고순경 김숙원 최영자 박봉희 이정숙 등 8명의 여성이 연서를 했는데, 이중에서 김숙경 만이 독립운동가 황병길의 처로 추정되고 나머지 여성들에 대해서는 개개인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그러니까 이들이 누구인지, 어떻게 선언서를 작성하게 되었는지, 그 배경이나 배포에 대해 아무 것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연구자들은 이 선언서는 순 한글로 작성을 해서 지식층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한 것으로 평등의 가치가 담겨있다고 말한다. 이런 자료가 말해주듯 독립운동의 역사를 바로 쓰기 위해서는 여성의 역할에 대한 관점을 전환해야 한다.

다행히 충북여성재단이 오늘 ‘여성사로 새로쓰는 충북독립운동’이라는 토론회를 개최하고, 충청북도가 11월17일 순국선열의날에 충북미래여성플라자 전시실에 11분의 충북출신 여성독립운동가의 흉상과 기록물 등을 전시할 계획이라서 고무적이다. 전체 인구의 10분의 1 이상이 독립시위에 참여한 세계혁명사의 초유의 일인 3.1혁명. 그 가운데 당당한 한 몫을 했던 여성독립운동가의 업적과 가치를 찾는 일은 이제부터 새롭게 시작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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