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민 청주시흥덕구 환경지도팀장

[동양일보]어릴 적 딸이 엄지손가락을 오래도록 빨아 손가락이 퉁퉁 부어 있었던 적이 있다. 처음엔 달래 보기도 하고 야단도 치고 했지만 헛수고였다. 결국에 엄지손가락에 보호대를 끼우기까지 했다.

얼마 전 아침 고 3 딸을 보면서 그땐 왜 바라보고만 있어도 예뻤다는 사실을 몰랐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나이 50이 넘어 훌쩍 커버린 자식들을 보며 어릴 적 못 느꼈던 사랑스러움이 한층 더해지는 걸 느끼며 한편으론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어느 날 처음으로 딸에게 사과를 했다.

“아빠가 너무 몰라서, 딸이 크는 동안 사랑스럽고 잘 하고 있다는 걸 모르고 야단만 치고 살았어.”

바빠서 그랬다고 핑계를 대긴 했지만 그때는 나도 힘든 시기여서 더 미안했던 것 같다.

아침에 불러 보는 딸, 방문 밖으로 들려오는 딸의 대답.

오늘은 문득 행복감이 몰려온다.

목소리만으로도 좋은 것을 그동안 무엇을 바랐기에 이 좋은 행복감을 모르고 살았을까 싶다. 한 번 더 다정하게 대답을 해 본다.

대문을 나서면서 나는 혼자라는 생각을 해 본다. 태어날 때도 나는 혼자 왔고, 이 생의 여행이 끝나는 날 또한 혼자 갈 텐데. 같이 있는 시간 동안 딸과 아버지로 인연이 맺어져 같은 공간 안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엄연히 말하면 각자인 것을…. 내가 아파도 나 혼자 아플 것이고, 배가 고파도 내 배가 고픈 것처럼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개인이다.

오늘 내가 만날 사람들도 자신들의 일상을 자신들만의 삶의 방식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다만 여럿이 모여 공동의 몫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인 것처럼 보이지만 모래알이 쌓여 해변의 모래사장을 만든 것처럼 우리 하나하나는 다 같지 않고 모두 제각각의 모습을 하고 있다. 모래사장을 자세히 보면 어떤 놈은 각이 졌고, 어떤 놈은 둥글고, 어떤 놈은 매끈하고 삐딱하고 각양각색이지만 그 모두는 특별한 존재들이다. 이렇게 모인 모래들이 아름다운 해변의 모래사장을 만들고 그를 바라보는 이들에게 마음의 편안과 행복과 기쁨을 선사하는 것이다. 혼자라는 생각에 쓸쓸함이 몰려왔다가 ‘다 같이’라는 생각으로 쓸쓸함이 썰물처럼 빠진다.

내가 오늘 만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오랜 시간 연관이 있었기에 보게 되는 건지 소중하다. 그중엔 나를 기쁘게 하는 이도 있고, 나를 화나게 하는 이도 있겠지만 이 모두가 나와 연관된 하나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삶의 그릇에는 좋은 것만 채울 수도, 나쁜 것만 채울 수도 없다. 삶은 비빔밥처럼 콩나물도 있고 김치도 있고 시래기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감칠맛을 위해 참기름도 넣고 계란 프라이로 마무리하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삶에서 각자에 맞는 참기름을 찾아야 하고 인생의 마무리인 계란 프라이도 찾아야 할 것이다.

아침에 불러 본 딸은 내 삶의 계란 프라이요 아들은 삶의 참기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젓가락으로 삶의 비빔밥을 비비면서 혼자가 아닌 나를 다시금 본다. 젓가락이 하나는 나일 것이며, 다른 하나는 아내이기 때문이다.

삶은 언제나 나와 함께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내 그릇을 채우고 있다. 각자의 그릇의 크기가 얼마나 큰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릇이 넘치도록 비빔밥의 재료를 한없이 넣어봄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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