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 국회의원

[동양일보]필자도 속해 있지만 86세대(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 세대)의 정서는 여러모로 특이하다. 나이 서른이 되자 최영미 시인은 20대의 격정적인 무대는 끝났음을 한탄하며 “서른 잔치는 끝났다”고 썼다. 서른이 넘자 마치 인생을 다 산 것 같은 회환에 젖은 시인은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며 여운을 남긴다. 가수 김광석은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라고 서른 즈음을 노래했다. 이 곡조나 가사 내용은 칠순잔치 같은 내용이다. 최루탄과 몽둥이 난무하던 20대에 그들은 투쟁하고 좌절하며 거리와 선술집에서 20대를 보냈다. 그들은 주류사회에 온 몸을 던져 저항하는 시대의 안티테제였다. 그런데 더 이상 국가와 민족을 위해 한 몸 던져 투쟁하는 청춘이 아니라 자식 키우고 돈을 벌어야 하는 생활인이 되어야 하는 문턱에 다다르자 그들은 사는 것 자체가 어색했다. 그러니 이념의 전사로서의 삶을 청산하고 소시민이 되어야 하는 스스로의 처지에 한탄이 나올 만 했다. 이렇게 나이 서른 먹는 것 가지고 온갖 야단법석을 떤 이 세대는 이후 20년 넘게 특유의 경쟁력으로 사회의 지도층으로 진출했고 기득권 세대로 편입되었다.



사실 아직도 86세대의 상당수는 젊은 시절의 원칙을 저버리지 않고 약자들 곁에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있다. 그 진정성만큼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러나 서른이 되던 시절부터 이미 사회의 주역이 된 자신들이 새로운 나라,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책임 있는 일원이라는 점을 집단적으로 자각하지 못했다. 이제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바로 그들의 나라가 되었다. 독일은 68혁명으로 탄생한 사회변혁의 세대가 튼튼하고 정의로운 나라의 초석을 닦고, 90년대에는 통일을 성취했다. 중국은 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광장에 나와 있던 민주화 세력들이 이제는 당과 정부의 지도층으로 진출하여 세계에서 가장 놀라운 성장을 도모하는 대국을 이끌고 있다. 중국과 독일에서는 한 사회에 강력한 변화의 시대정신을 구현한 혁명 세대들이 더 밝고 힘찬 세계를 창조하려는 결연함으로 확장되었다. 그런데 한국의 86세대는 무엇을 성취했는가? 그렇게 정의와 평등을 외쳤지만 그 자식들은 더 지독한 승자독식의 경쟁으로 내몰리고 있고, 빈부의 격차는 더 벌어졌으며, 민주주의는 도전받고 있고, 한반도에서 갈등과 대립은 전혀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86세대는 그 앞과 뒤의 세대로부터 기득권을 독식하는 이기적 세대로 불신을 받고 있다.



20대의 급진성은 30대가 되어서는 온전한 책임성으로 진화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86세대는 무력할 뿐만 아니라 무책임했다. 여기에 최근 우리 정치를 흔드는 ‘조국 현상’의 본질이 있다. 지금 청년들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게 “당신 세대는 무엇을 했는가?”라고 묻고 있다. 공부할 시간조차 쪼개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들은 조국 후보자의 딸이 200만원 장학금을 꼬박꼬박 받았다는 사실에 상실감을 느낀다. 그러면 후보자 본인이 “내가 젊은이들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깊이 반성하고 사과해야 한다. 그런데 여당과 후보자는 법 위반은 아니다, 규정 위반은 아니다, 라는 빠져나가는 태도로 오히려 염장을 지르고 말았다. 이런 해명은 86세대가 이 사회에 어떤 책임성을 느끼지 않는 것 아닌가, 라는 의구심을 키운다. 이런 식이라면 86세대 전체가 말로는 정의를 외치지만 또 하나의 기득권에 지나지 않음을 드러내고 말았다. 국가 공동체에 대한 비전과 책임성을 보여주면서, 86세대는 창조적 에너지로 충전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진영 대결에만 몰두하면 우리 세대는 그 무책임성으로 인해 혹독한 심판에 직면할 것이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