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박장미 기자]14회 충북여성문학상에 이승애(58) 시인의 ‘술 익는 소리’가 선정됐다. 시상식은 오는 18일 오후 4시 동양일보 아카데미홀에서 열리며 이 시인에게는 ‘황금펜촉패’가 수여된다. 수상작과 수상소감, 심사평을 싣는다. <편집자>



●충북여성문학상은?

동양일보와 뒷목문학회는 충북여성문학의 발전과 여성문인들의 창작의욕 고취를 목적으로 전 문학 장르를 통틀어 가장 우수한 작품을 발표한 충북여성문인 1명을 선정해 집중 조명하는 충북여성문학상을 제정, 시상해오고 있다.

역대 수상자는 2006년 1회 박영자 수필가와 2007년 2회 박재분 시인, 2008년 3회 박등 시인, 2009년 4회 김경순 수필가, 2010년 5회 유영삼 시인, 2011년 6회 차은량 수필가, 2012년 7회 신준수 시인, 2013년 8회 이은희 수필가, 2014년 9회 강순희 소설가, 2015년 10회 권영이 동화작가, 2016년 11회 노영임 시조시인, 2017년 12회 최덕순 시인, 2018년 13회 박명애 수필가이다.

심사 대상은 충북에서 3년 이상 거주한 여성문인(뒷목문학회 회원은 제외)이 매년 7월 1일부터 다음해 6월 30일까지 국내의 신문, 잡지, 동인지, 문예지 등에 발표한 작품이다. 이를 문학상 운영위원회가 추천하는 심사위원들이 개별로 2편씩 뽑는 1차 심사를 하고, 심사위원 전원이 참석해 토론과 협의를 거치는 2차 심사로 최종 수상자를 결정한다.



이승애 시인

<약력>

△1961년 경북 청도 출생

△1985년 경상북도 도지사상 수기 공모 대상

△2015년 충북여성백일장 시 차장

△2016년 신사임당 전국백일장 시 차상

△2017년 문학저널 신인문학상, 충북보건과학대 졸업

△2018년 11회 푸른솔도민백일장 시 장원 충북도지사상

△충북여백문학회·신사임당 시문회·문학저널·충북시인협회 회원, 딩아돌하운영위원.

△조은술세종(주) 대표이사



수상작

술 익는 소리

이승애



옹알이가 시작되었다



입술이 두꺼운 큰 항아리마다

고두밥과 누룩이 섞여

옹알대기 시작했다



자갈바닥의 달큼한 두드림

깊은 우물 두레박의 인기척

가쁜 숨 참았던 폭포수 휘어지는 소리를



새의 말과 늑대의 웃음과 호랑이 발자국과

버무려 앉힌 후



왈강달강 끓어오르는 항아리에서

눈 떼지 못하던 시간의 빛깔



가로등이 밤 새워 그 소릴 지키다 스러지고

별들도 창문을 끌어당겨 들여다보고

달빛은 제 몸도 섞자고 무작정 달려들고



거르지 않고 찾아오는 식욕처럼

잔 부딪고 웃음 도수를 높이다가

돌아서서 다시 뿌리를 세우는 삶



호수를 흔들어 마시던 바람으로

산골짝 흘러내린 말간 숨결로



해의 시간을 걸러 내린

만장일치의 발효



소리가 지나간 자리마다

제대로 삭힌 고요 한 동이

동그랗게 입을 연다



수상소감

백중날 절에서 행사를 마치고 뒷설거지를 마무리할 즈음 수상 전화를 받았습니다. 요사채 뒤로 배롱나무가 평생 피워야 할 꽃을 한꺼번에 다 피운 오후였습니다.

무척 기쁘면서도 다시 시작이라는 생각에 어깨가 무거워지며 순간 아득함을 느꼈습니다.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내 몫의 시간은 늘 석양빛 뒤란처럼 아쉽고 고양이 발걸음처럼 작고 조심스러워야 했습니다.

아들 둘을 서울대학교에 보내고 해피랜드 전문점 10년, 1997년 전통주 관련 사업을 시작으로 현재 조은술세종(주)를 경영하면서 나 자신에게 투자할 시간은 밀쳐주고서 가정과 사업번창에 몰두해야만 했습니다.

시는 언제나 구름 속 천둥처럼 혼자 울었고, 그 소리를 어떻게 받아 적을까 고민하던 밤이 많았습니다.

요즘 저에겐 시가 있어서 손끝에서 시작된 가슴 속 감흥을 전달하는 재미에 빠져있습니다.

‘술 익는 소리’도 술앉힌 항아리에 우주가 다 들어있다는 철학과 술의 과정을 노래했습니다. 체험과 경험이 시 세계를 더욱 확대하고 그만큼 큰 재산은 없다고 느껴집니다. 실생활의 아주 작은 것에 대한 귀 기울임으로 쓴 제 작은 노래가 심사위원들 눈에 들었다는 더없는 영광입니다.

시는 우리 삶의 내면속 깊은 사고와 이해에서 비롯된다고 했습니다.

모든 사물에 대한 관찰과 삶의 얼룩에서 새길 하나 찾아가는 과정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구불텅 거렸던 제 시의 길을 직진할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주신 동양일보와 뒷목문학회에 감사드리며 더욱 매진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또한 햇살과 공기 같은 소중한 가족들과 문학저널, 여백문학회 선후배님들 격려 잊지 않겠습니다. 꼭 좋은 시로 보답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심사평

옹알이에서 시작해 동그랗게 입을 열기까지



지난 1년간, 세상에 선을 보인 지역 여성 문인들의 작품을 골고루 살펴보는 일이 간단치 않은 일이지만, 한 해 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작품을 위해 바쳤을 열정을 생각하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즐겁다. 다만, 그중에서도 더 좋은 작품을 가려내는 작업인지라 한여름 무더위를 잊을 만큼 집중해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선정과정은 우선 지난 1년간 도내에서 발간된 30여 개 작품집을 심사위원들이 돌려가며 장르별로 살펴보고, 심사위원별들의 의견수렴을 거쳐 장르별로 복수의 우수작품을 최종심에 올린다. 최종심에서는 선정 사유를 토대로 다시 심도 있는 토론을 거쳐 최종 여성 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한다.



올해 14회를 맞는 ‘여성문학상’수상자는 시 부문에서 수상자가 나왔다. ‘이승애 시인의 ’술 익는 소리‘를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이 시인의 다른 시 ’인연‘도 이승애 시인의 역량을 충분히 입증할 만한 수작으로 보인다.

수필부문에서는 ’손의 이력‘, ’빨간 기와집’이 부문별 우수작으로 올라왔으나, 최종심에서 시 부문 ’술 익는 소리‘를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데 이의가 없었다.



선정작품을 보자. ‘옹알이가 시작되었다.’로 시작되는 이승애 시인의 시는 우선 낯설지가 않다. 술이 빚어지는 과정을 그냥 그림책을 넘기듯 천천히 보여준다.

고두밥과 누룩을 섞어 앉히면 ‘옹알이가 시작’되고 ‘새의 말, 늑대의 웃음, 호랑이 발자국’이 있는 익숙한 이야기 속으로 우리를 이끈다. 오랜 세월이 녹아있는 전래동화처럼 익숙하지만 늘 새로운 재미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새의 말이 시끄럽지도, 늑대의 웃음이 음험하지도, 호랑이의 발자국이 무섭지도 않다. 야트막한 뒷동산에서도 흔히 볼 수 있을 것 같은 친근하고 익숙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이승애 시인의 시는 뒤태가 고운 여인처럼 편하다. 편해서 좋다. 뒤태로 봐서 누군지는 모르지만 얌전하고 차분하고 정갈하고 맵시 있는 다정한 여인네의 모습이 떠오른다.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도, ‘왈강달강 끓어오르는 항아리에서/눈 떼지 못하던 시간의 빛깔’이 자연스럽게 우러난다. 그냥 기다리면 된다. ‘왈강달강’해도 소란스럽지가 않다. 그냥 옹알이다.

술이 익기를 기다리는 시간도 마찬가지다. 산고를 치르듯 인고의 시간일지언정 수고스러움을 말하지 않는다. 달빛이 ‘제 몸도 섞자고’ 무작정 달려들 만큼 따뜻하고 자연스러운 시간이다.



그렇게 우리의 삶이 ‘만장일치의 발효’처럼 자연과 세월 속에 녹아들 때 비로소 ‘동그랗게 입을’ 열어 한 인생을 말할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하고 있다.

이승애 시인의 시, ‘술 익는 소리’에서 웃음기를 빼고, 정겨움도, 익숙함도 버리면 남는 등걸이 하나 있다. ‘옹알이’에서 시작해 ‘동그랗게 입을’ 열기까지의 과정은 궁극적으로 ‘돌아서서 다시 뿌리를 세우는 삶’이며, 그 삶을 위해 살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