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동양일보]논에 벼가 많이 팼다. 텔레비전을 보니까 이웃 지역에선 벌써 벼를 베는 농가가 있다는 소식이다. 참으로 달수 빠르게 간다. 벼 심은 지 40여일이면 베는 것인데 어느덧 그렇게 됐는가. 농협에서 전문으로 모를 기르면 그것을 사다가 이앙기로 모를 심어주는 전문인이 있어 주인은 돈만 지르면 된다. 참 세상이 좋아진 것인가 야박해진 것인가 노인장들이 모여 이에 격세지감을 느끼고 옛날로 돌아간다.

“옛날 우리들 벼농사 지을 땐 제일 첫 번째로 집집이 ‘못자리’를 만들었잖여.” “그렇지, 논에 옮겨 심을 요량으로 벼의 싹 즉 모를 틔우려고 못자리부터 만들었지.” “우리 그 서마지기 논배미에다 못자리를 꾸미느라 돌아가신 우리 아버님하구 며칠 애먹었네.” “집집마다 다 그랬지 뭐. 여하튼 그리구 나선 ‘모판’을 꾸며야 되잖여.” “그렇지, 논에 가서 손질하기 편리하도록 못자리의 사이사이를 떼어서 직사각형으로 반듯반듯하게 해놔야지.” “그러면 거기다 또 ‘모판흙’을 깔잖여.” “그 흙은 아무 흙이나 되남, 기름진 흙에다 퇴비를 섞어서 모판 바닥에 깔었지.” “그렇게 하는 걸 ‘상토’라고도 하는데, 그 상토 한 담에 볍씨를 뿌리고 말이지.” “그 볍씨를 뿌릴 때 것두 요령이 있어야 혀. 너무 많이 뿌려두 안 되구 적게 뿌려두 안 되구 일정해야 되잖여.” “그렇구 말구. 그러는 걸 ‘모를 붓는다.’고 했어.” “그렇게 해서 모가 자라 논에 나갈 때가 되면 ‘모를 찌어야’ 하고 말이지.” “그려, 논에 다 자란 모를 심으려면 모판에서 모를 뽑아야지.” “그 모판에서 뽑은 모를, 다시 말해 그 모찌기한 것을 논으로 옮겨 심어야 하고 그러는 걸 ‘모내기’ 또는 ‘모심기’라고 했는데, 그 모 심을 때는 온 동네사람들이 모두 나섰지 왜.” “그려, 그려, 집집이 돌아가며 모를 심느라 며칠을 두고 바쁘게 돌아갔지.” “그래도 그때는 그게 동네의 큰 행사라 힘들다기보다는 재밌었어.” “모를 심을려면 모와 모 사이를 일정하게 맞추어야 해서 논을 가로지르는 ‘못줄’을 띠워야 하는데, 그건 주로 기와집 양반하고 큰대문집 어른이 양쪽에서 잡았잖여.” “그 양반들은 들일을 안 해본 사람이라 그것밖에 할 수가 없어서 그랬지 뭐.” “못줄 띠우기가 어디 쉬운 건가 모잡이들이 다 심었나 봐가며 줄을 앞으로 옮겨야 하기 때문에 눈코 뜰 새 없는겨.” “‘모잡이’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우리 모두가 모낼 땐 모만 심는 모잡이였지 뭐.” “아녀, 여깄는 인복인 그렇지도 아녔어, 워뗘 자넨 ‘모잡이’와 ‘모쟁이’를 죽은 만상이하구 서로 번갈아가며 했잖여?”

그랬다. 인복인 모를 논에 심을 때 그 모를 심는 ‘모잡이’와 모춤(모를 묶은 단)을 모잡이들에게 몫몫이 나누어 주는 ‘모쟁이’ 노릇을 열심히 했다. 그런데 이 모잡이와 모쟁이는 모심기에 있어 베테랑이 아니면 안 되었다. 왜냐 하면 모잡이들의 모심는 속도를 가늠해서 모쟁이가 모춤을 제때에 공급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모심는 능률을 올리려면 이렇게 이 둘의 역할은 큰 것이었다. 한데 인복이와 만상이는 이 모심는 일에 관한한 상일꾼이다. 인복인 그 누구 들 보다도 모를 제일 먼저 심고 허리를 펴고 일어나 만상이쪽을 본다. 헌데 만상인 인복이가 그러기 전에 벌써 모춤을 들고 인복에게 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하기는 둘이 역할이 서로 바뀔 때도 똑같이 그랬다. 그들에게 동네선 모내기철이 되면 이렇게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이들에게 이 힘들고 중요한 모잡이와 모쟁이 일을 서로 바꿔가며 하게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둘은 모심는 일과 모춤을 몫몫이 나누어 주는 일에 있어 전문가였다. 그런데 그 만상이가 2년 전에 70중반으로 세상을 떴다.

“그려, 그려, 참 인복이가 먼저 간 만상이 하구 모잡이 모쟁이 노릇을 번갈아가며 맡어 놓구 했지.” “다 옛날 얘기여. 근데 말여, 못자리를 하고 추수해서 쌀이 나오기까지 여든여덟 번이나 우리 농부의 손이 간다지?”

그렇다. ‘쌀미(米)’ 자를 풀어보면, 팔십팔(八十八) 이 된다. 이는, 쌀이 나오기까지는 농부의 손이 여든여덟 번 간다는 것이고, 그만큼 농부의 노고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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