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 논설위원, 시인

[동양일보]얼마 전, 서울 관악구의 한 가게에서 출입문에 ‘49세 이상의 손님은 사절’한다는 안내문을 써 붙여 화제가 됐다. 일부 식당이나 카페에서 어린이의 출입을 제한하는 '노키즈존(No kids zone)'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아직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제 '노시니어존(No senior zone)'이 생겨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29세 이상 출입금지’라는 표지를 내건 클럽이나 바에서도 소위 ‘물 흐린다.’는 명분에 떳떳하다는 태도다.

최근 한일관계를 반영하듯, 부산의 한 고깃집에서 가게 전면에 ‘일본인 출입금지’ 현수막을 내건 것이 SNS를 통해 누리꾼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나이에 제한을 두어, 혹은 다른 조건을 달아 출입을 금지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직접 해당 사항은 없다 해도 썩 기분 좋은 입장은 아니다.

이유는 다 있다. 알고 보면 이해 가는 부분도 있다. 허나 사회 전반에 ‘출입금지’의 벽이 너무 높고 견고하다. 첫 번째 사례는 50대 여성인 사장 혼자서 하는 조그만 포차에서 중장년층 손님들이 유독 말을 자주 걸어오는 통에 일에 방해가 돼서 비상수단을 쓴 거라는 얘기고, ’노키즈존’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아이가 식당이나 공공장소에서 아무렇게나 행동해도 정작 부모는 한없이 귀엽기만 한 ‘무개념 자식 사랑’이 문제라는 것이다.

오히려 아이만 보면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이른바 ‘키즈시즘(Kids-cism)’이 형성돼 인종차별(racism)’만큼이나 심각한 역차별의 부메랑이 맞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애국은 못 했어도 불매운동은 한다.’,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일본 고객은 받지 않겠다는 선택을 옳고 그름의 잣대로 판단하기 어렵다. 일본 대마도의 중심가인 이즈하라에서도 ‘한국인을 받지 않겠다'는 문구를 써 붙인 가게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은 천성적으로 정치적(사회적) 동물이다.’, 고전이 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

지구 위에 수많은 길을 만들며 찾아가고 모여 사는 인간 군상에게 ‘출입금지’는 반사회적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거나, 혼자로도 충분해서 사회가 필요 없는 사람은 짐승이거나 신이 틀림없다.’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회’에 대한 정의다.

‘출입금지’는 21세기의 기본적인 가치, 자유와 평등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개념이다.

언제부터 사람들이 금을 긋고, 펜스를 치고, 현수막을 걸고 자유로운 출입을 통제했을까. ‘청소년 출입금지’, ‘관계자 외 출입금지’, ‘외부인 출입금지’ ‘잡상인 출입금지’ 등 주변을 살펴보면 출입을 통제하는 곳이 많다.

인류의 역사는 길의 역사다. ‘실크로드’와 ‘차마고도’를 만들며 넘으며 자연과 순응해서 살아온 것이다. 1977년, 오늘은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제작한 태양계 무인 탐사선, 보이저 1호(Voyager1)가 지구를 떠난 날이다. 지구 밖으로까지 길을 넓히는 중이다.

예전의 울타리는 ‘출입금지’의 개념이 아니다. 차별이 아닌 ‘보호’와 ‘정’을 기본으로 하는 최소한의 공동체를 구분 짓는 경계다. ‘사립문’도 마찬가지다. ‘배척’과 ‘방어’가 아닌, 비스듬히 열어 놓은, 필요하면 언제든지 와도 좋다는 ‘초대’의 모습이다. 최소한 사람을 막으려고 애써 닫아걸지는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 불법 이민자 단속을 위해 멕시코 접경지역에 3,144Km에 이르는 장벽을 건설하고 있다. 가장 길고 비인격적인 ‘출입금지’ 구역이 설정되는 셈이다.

무엇이 21세기의 인류사회에 ‘출입금지’의 장벽을 건설토록 한 것일까.

거슬러 올라가면 최초의 출입금지구역은 ‘에덴동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속성을 들여다보신 신께서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선악과’를 최소한의 규범으로 세워주셨는데, 이를 지키지 못한 인간으로부터 공감과 배려의 더듬이를 거두어 갔기 때문이다.

앞으로 ‘키즈 존’이나 ‘시니어 존’이 더 이상 강제적이고 배타적인 출입금지구역이 아니라, 우리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걸러지고 녹아들어 아름다운 소통의 구역으로 재탄생 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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