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래 전 충북문인협회제천시지부장

김흥래   전 충북문인협회제천시지부장
김흥래 전 충북문인협회제천시지부장

 

[동양일보] “아니! 이게 무슨 내용이야!”

“뭔데 그래?”

“글쎄 말이야. 좋은 문구인데 꼭 7명 이상에 보내야 한다는데?”

“좋은 말씀을 누구에게 보내주면 고마운 일이지!?”

“그리하지 않으면 불행이 온다잖아.”

“......"



행운은 주는 자체로 충분하다. 부대조건을 이행하여야 행운을 주겠다는 내용은 그 저의가 의심되며, 참으로 얄팍한 술수가 아닐 수 없다.

기대와 희망을 갖게 하는 행운의 이미지에 먹물을 튀기는 사례로 행운의 편지가 대표적이며, 학창 시절에 이를 받아 보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다른 7명에게 전달하여야 하는데 그 시절에는 일일이 써야 하니 모두 손으로 작성한다는 게 고역이었다. 편지를 보낸 루스벨트는 전무후무한 4선(選)의 대통령이 되었지만 이를 무시한 케네디는 비운의 암살을 당했다는 섬뜩한 내용은 차가운 금속의 촉감으로 등 뒤를 찌르는 칼날 같았다. 행운을 얻으려 하기 보다는 보내지 않을 경우 불행이 닥친다는 말에 꺼림칙하여 마지못해 쓰던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밤늦게 또박또박 7통을 써 우체통에 넣고 속이 후련하다며 돌아오면 며칠 지나지 않아 또 다시 그러한 행운의 편지를 받는 사례가 반복되었다. 당시에는 발송자 표기되지 않으니 자신에게 받은 사람들이 이어 보내는 대상 7명 중에 본인도 포함될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여 행운의 편지 양상도 바뀌었다. 손으로 쓴 편지는 거의 볼 수 없으며 인터넷을 활용한 ‘행운의 이메일’이 등장하더니 그도 이제 일일이 열어 보아야 하는 번거로움으로 거의 활용되지 않는다. 반면에 전국민의 대다수가 지니고 있는 핸드폰ㆍ스마트폰을 활용한 ‘행운의 메시지’가 등장하여 오랜 기간 대세를 이루고 있다.

통수도 과거 손으로 쓰던 시절보다 훨씬 많은 수량을 요구하는데 20통 이상이 기본이다. 익명의 손 편지나 스팸 이메일로 보내는 경우와 달리 메시지의 경우 발송자를 쉬이 알 수 있는데 복사하여 일괄 발송한다 하더라도 과연 보낸 이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될까?

행운을 선물하는 의도는 좋은 취지이며, 유익한 내용을 공유하는 마음 또한 아름다우나 상대에 어떤 부담 주기를 병행한다면 결코 바람직하다할 수 없다.

이러한 행운의 편지는 꽤 오래 전에 시작되었다고 하며, 당초에는 홍보 아이디어차원에서 심리적 유도수단으로 이용된 것으로 알려진다. 그나마 아날로그 시대에는 물리적으로 사람들에 전파하기 위하여 전달 강요하는 방법이 유용하였을지 모르나, 요즘의 디지털 시대에는 그 효용성이 매우 낮다할 수 있다. 굳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홍보하고 싶은 내용에 대하여 얼마든지 많은 이들에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이 넘치는 현실이다.

유치환의 시 ‘행복’에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는 시구(詩句)가 나온다. 다른 이에게 기쁨을 주면 그 자체로 행복하다는 의미로 풀이되며, 이에 조건이 붙을 필요도, 이유도 없다는 뜻이다.

이제 행운의 시리즈는 바뀌어야 한다.

희망을 주거나 건강에 좋은 내용을 보내면 족하며, 다른 이에 대한 전파는 강제가 아니라 받는 이의 판단에 맡기면 된다. 실제로 다른 이가 보내 준 자료의 내용이 너무 좋아 굳이 명령(?)이 없어도 지인들에게 스스로 다시 보내는 많은 경험들을 하게 된다.

멀리, 뒤에서 세상의 바다에 돌을 하나 던진 후 받은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주위에 여러 개씩 던져 나가는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희희낙락하는 무리의 사람들이 생겨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받은 후 주변에 던지지 않으면 불행을 당할 수 있다는 낭설이 가지게 되는 파급력에 가공할 위력의 신소재 폭탄을 만든 듯한 착각을 하고 있을 무리들 말이다.

행운 시리즈를 받고 불행이 올 수 있다는 엄포에 겁먹고 급작스레 다른 이에게 다시 재전송하는 사람도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집 안에 불덩이가 들어오면 그 불을 끌 생각을 하여야지 불씨를 다른 집으로 던지는 격이다.

속담에 ‘문풍지에 구멍이 뚫리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구멍이 뚫리면 마(魔)가 끼인다’고 한다. 잡념과 불안감 역시 마(魔)의 일종이라면 근거 없는 요설(妖說)에 현혹될 필요가 없다. 이러한 풍조가 확산되면 양의 탈을 쓴 그 지긋지긋한 늑대의 행운 시리즈가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일정 인원 이상에 전달하여야 행운이 온다는 류(類)의 시리즈는 받자마자 삭제나 파기하는 용기를 갖도록 하자. 그러한 이들에게 행운이 찾아올 것이며, 행운을 얻게 되는 방법이다. 자신이 부담을 지면서 다른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심적 고통을 덜어주게 되니 말이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