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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칼럼/ 내가 고등학교 강연을 안 가는 이유
동양칼럼/ 내가 고등학교 강연을 안 가는 이유
  • 동양일보
  • 승인 2019.09.15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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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국회의원
김종대/ 국회의원

[동양일보]이번 달 27일에 개점하는 가경동의 백화점의 총책임을 맡은 이랜드 리테일의 지점장은 새로 들어오게 될 신입사원의 면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영어 실력은 기본이고 회계, 정보처리는 물론 갖가지 화려한 스펙으로 꽉 채워진 이들은 본사에 지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일류 인재들이었다. 그러나 지방대 출신이기에 상경하지 못하고 지방의 백화점에 자원한 이들에게 이 지점장은 미안한 마음부터 들더라고 했다. 지역의 취업박람회에 구름처럼 몰려든 젊고 뛰어난 인재들 모두에게 기회를 주지 못하고 그 중 일부만 채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씁쓸하다고도 했다. 그나마 이 백화점에 취업한 신입사원들은 기회를 포착한 행운아들이다. 여기에도 끼지 못하고 자기소개서를 만지작거리며 취업의 바늘구멍을 찾아 서성여야 할 수많은 청춘들에게 현실의 벽은 너무도 높다. 아무리 노력해도 제자리걸음인 이들에게 돌아오는 말은 “더 노력해라”는 말뿐이다.

서울의 사정도 복잡하다. 외무부 장관을 마치고 지금은 한양대학교에서 후진을 양성하는 김성환 교수는 필자에게 가슴 아픈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얼마 전 공공 연구기관에 연구원으로 응시한 제자가 낙방을 했단다. 실력으로는 전혀 손색이 없는 제자의 낙방 이유를 물었더니 “한양대 스펙으로는 안 되더라”는 것이었다. 그 순간 김 교수는 자신이 뛰어난 외교 인재를 양성하는 게 학벌의 벽에 막혀 있다는 걸 실감하고 탄식이 나왔다. 한편 미국에서 교포 3세로 대학까지 마치고 우리나라에 들어와 취업한 한 여성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겪었다고 필자에게 털어놓는다. 연세대 학생과 세 번 소개팅이란 걸 했는데 이상하게도 세 명의 연세대생이 똑같이 이상한 말을 하더란다. “고대는 연대보다 후진 학교”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한국의 연대와 고대는 원래 감정이 안 좋은 관계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아니라 학교의 서열을 친절하게 설명해준 것에 불과했다.

실력이 아니라 학벌로 인생의 반 이상이 결정되었다면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는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다. 게다가 그 학벌도 엄마의 정보력과 아빠의 무관심, 그리고 할아버지의 재력이 삼위일체의 역량으로 만들어낸 것이라면 더더구나 문제가 심각하다. 이게 서울 어느 한 구석의 동화 속에나 존재하는 비현실적인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조국 법무부 장관이 몸소 엄연한 현실임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강남에 스카이 대학 진학을 책임지는 오황제가 있다는 말도 뜬 소문이 아니었음을 재확인하게 되었다. 얼마 전에 필자가 소속된 정당은 대통령의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명을 “존중한다”고 발표했다. 물론 사법개혁의 대의라는 다른 명분이 있기는 했지만 양심에 부합되는 선택은 아니었다. 이 일이 있고 필자는 당분간 고등학교와 대학 강연을 가지 않겠다고 했다. 무슨 낯으로 청춘을 마주볼 것인가. 무슨 희망을 이야기할 것인가. 부와 학벌이 대물림되는 세상이니 너희도 적당히 눈치나 보며 살라고 할 것인가. 그게 기성세대가 할 일인가.

한국 사회는 청춘의 창조적 에너지를 서서히 질식시키고 있다. 여기에다 기회를 공평하게 나누고 실력으로 결과를 만드는 사회를 만드는 정치가 아니라면, 그것은 세습 기득권을 닮은 정치에 다름 아닐 것이다. 저성장과 양극화에 직면한 한국 사회에서 부와 학벌의 대물림이야말로 국가 공동체를 붕괴시키는 독배가 될 것이다. 참으로 부끄럽게도 이번에 필자도 그런 선택을 했다. 그러니 이제라도 우리가 온 힘을 다해 이 불공정의 벽을 무너뜨리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더 이상 내일은 없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성찰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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