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엄재천 기자]이시종 충북지사가 전국 최초로 충북도의회를 통과한 ‘충청북도 일본 전범기업 제품 공공구매 제한에 관한 조례안’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 이 조례안을 공포하자니 상위법을 저촉할 수 있고,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위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포를 하지 않으면 국민운동으로 번지고 있는 일본제품 불매운동과 국민정서와는 정반대여서 이래저래 고민만 깊어지고 있다.

16일 충북도와 충북도의회에 따르면 ‘일본 전범기업 제품 공공구매 제한에 관한 조례안’은 일본 전범기업이 생산한 제품의 공공구매를 제한하는 것이 핵심이다. 다만 국산 제품으로 대체가 불가능한 경우는 예외로 하고 있다.

조례 적용을 받는 기관은 충북도 본청과 직속기관, 사업소, 출장소, 충북도의회 사무처, 도 산하 출자·출연기관이다.

충북도로 넘어온 조례는 20일 이내 공포해야 한다. 오는 23일이 시한이지만 도는 공포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 지사는 도청 출입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전범기업들에 대한 구체적인 명시가 부족하다”며 “전범기업하면 일목요연하게 명시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그 명시가 불명확한 상태”라고 꼬집었다.

조례에는 ‘전범기업’을 대일항쟁기 당시 일본기업이며 대한민국 국민을 강제 동원해 생명·신체·재산 등의 피해를 준 기업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른 자본으로 설립됐거나 주식을 보유한 기업, 이를 흡수 합병한 기업도 포함했다.

도는 이런 규정으로는 전범기업 명칭과 수를 명확히 파악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일본 전범기업이 법에 명시되지 않았고 정부가 공식 발표한 자료가 없다는 이유도 들었다.

전범기업과 관련해선 국무총리실이 발표한 299개 기업이 전부다. 이 중 현존 기업은 284개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 관계자는 “조례가 시행되면 WTO 협정에 위배될 수 있다”며 “공공구매 제한을 조례로 명문화하면 자유무역 원칙에 어긋날 수 있는 것은 물론 충북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본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등의 수출규제를 하고 있다”며 “하지만 한국은 국가안보보다는 강제징용에 따른 전범기업의 배상문제로 보고 있는 것이 다르다”고 말했다.

현재 관련 조례안이 의회를 통과한 시·도의회는 서울과 부산, 강원, 충북이다.

서울시는 조례 공포 절차를 밟을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시와 강원도는 다른 시·도의 움직임을 살피는 분위기다.

반면 세종시의회와 충남도의회는 조례안 의결을 보류했다. 전범기업이 생산한 제품을 조례안에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는 의견 등이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도 관계자는 “금명간 전국 시·도의회 의장단이 모임을 가질 예정”이라며 “이 모임에서 어떤 형태로든 결론이 나올 것이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추이를 지켜보면서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엄재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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