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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이슬받이
풍향계/ 이슬받이
  • 동양일보
  • 승인 2019.09.17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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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동양일보] 여름날, 어둑어둑 땅거미가 들 무렵이면 모기가 떼를 지어 날아다녀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그래서 모기가 사람에게 못 달려들도록 모깃불을 피운다. 모깃불에는 산에서 나는 약쑥이 들에서 나는 일반 쑥보다 냄새(향)가 강해서 더 좋지만 산에서 나는 것이고 이름 그대로 약쑥이기 때문에 약재로 쓰는 것이라 귀해서, 주위에 널려 있는 풀이나 벼의 낱알을 뺀 왕겨 따위가 모깃불의 주재료다. 그런데 사람에게 달려들어 성가시게 하는 모기는 암컷이라 한다. 그래서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냅둬유. 암컷이 수컷 좋다구 달려드는데 왜 성가시다구 쫓아유.”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남자들은, “아이구, 남의 사내 좋아 들여 봤자 자기 것만 뺏기는 거유” 하며 맞장구를 친다는 것인데, 모기의 수컷은 식물의 즙을 빨아먹기 때문이란다. 다 우스갯소리지만 여하튼 처서가 지나면 이 극성스럽던 모기도 맥을 못 추고 점차 사라진다.

그러면 이슬이 한창이다. 물론 이슬은 여름에도 내린다. 그러나 가을로 들어서서 내리는 이슬은 감당을 못할 정도다. 그래서 ‘이슬받이’ 란 말이 이때 나왔다. 이슬이 한창 내리는 무렵인 이 초가을엔, 양 길섶의 풀에 이슬이 한창 맺혀 있는 작은 오솔길을 이룬다. 그래서 지난날엔 이슬이 맺힌 이런 풀 섶을 걸을 때는 이슬을 막기 위해서 아랫도리에 도롱이를 찼다. 또 이슬 내린 길을 걸을 때는 맨 앞에 서서 가는 사람이 있었다. 뒤에 오는 사람에게 이슬을 맞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이 일련의 것들, 즉 이슬이 내릴 무렵, 이슬을 막기 위해 도롱이를 차는 일. 이슬내린 길을 앞장서 가는 사람 등 이를 통틀어 ‘이슬받이’ 라 했다. 그러니까 이슬받이는 궂은일을 대신 하는 사람이다.

이 이슬받이가 이 동네에 있었다. 곧 상곤이다. 동네사람들이 동네의 중한 일이나 잔치 따위의 일로 모이는 날이면 상곤이가 있나 없나 부터 살폈다. 그날 모임에도 마찬가지였다. “왜 상곤이 안 보여?” “저기 있네. 저 몽구리 안 보여?” ‘몽구리’란, ‘바짝 깎은 머리’로, 상곤이가 늘 빡빡 깎은 머리를 하고 있어 하는 소리다. “어, 그려, 그려, 중머리 저기 있구먼!” “상곤이 참 이름도 많네. 이슬받이, 몽구리, 중머리, 해서 세 가지니 말일세.” “넷이지. 제 본 이름까지 치면 말야.” “그렇네 참, 하지만 ‘이슬받이’가 동네이름 아녀?” “왜 아녀. 항상 동네 궂은일은 싫다 하지 않는 사람인데 올해로 이모지년이지 아메.” “이모지년?” “그려, 이 사람아, 내 달랑 하나 알고 있는 문자 한 번 썼더니만 못 알 듣는구먼. 서른두 살이란 말여.” 그렇다 ‘이모지년(二毛之年)이란, 센 머리털이 나기 시작하는 나이 라는 뜻으로, 서른두 살을 이르는 한자어다. “그러게 왜 난데없이 한자어를 써?” “시방 그게 중한 게 아녀 이 사람아, 오늘 같은 날 이슬받이인 상곤이가 없으면 안 돼서 찾는 건데 왜 쓰잘 데 없는 말로 흘러!” 7년 전, 이 마을 인근에 모텔이 들어선다 하여 상곤이 앞장세워 결사반대를 외치게 해서 해결을 보고, 5년 전엔 동네 야산에 쓰레기 하치장을 건립한다는 걸 빡빡머리 상곤이 머리에 두건 씌워서 앞장세워 해결했던 것이라 그날도 상곤이가 또 꼭 필요한 동내모임이어서 모인 것이다. 그동안 악덕 공장장이라고 이름났던 그 공장장이 무서워 임금이 밀려 말 못하고 있는 동네 사람을 위해서 동네 모임을 가진 것인데 마침 상곤이가 나와 있었던 것이다. 하여 이날도 그 빡빡머리의 상곤이를 필두로 온 동네사람들이 몰려드니 그 거셌던 공장장도 손을 들고 말았었다. 이게 2년 전의 일로, 상곤인 그 열흘 후 읍내 나가다 트럭에 치어 숨졌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었다.

그런데 요즘 상곤이 대신으로 이슬받이가 나왔다는 동네 소문이다. 이번엔 진짜로 이슬받이인데 그게 바로 죽은 상곤이 처라는 것이다. 마침 요새가 초가을이라 풀 섶에 이슬이 한창인 데다 또한 알밤이 한창 떨어지는 때여서 온 동네아낙들이 이른 아침에 이 밤을 주우려고 밤나무가 있는 산까지 수풀을 헤치고 들어가려 해도 그놈의 이슬 때문에 엄두를 못 내고 끌탕만 하고 있는데, 긴 장화를 신은 상곤이 처가 긴 막대를 들고는 제일 앞장서서 이슬 흠뻑 먹은 수풀을 헤쳐 주며 따라오라고 해서 앞치마로 한가득 씩 주워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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