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동양일보 김영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16일 청와대 앞에서 삭발했다. 유례없는 제1야당 대표의 삭발이라는 점에서 그만큼 파급력이 크다.

황 대표의 삭발은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 반대를 위한 대여 투쟁의 승부수로 보인다. 9월 정기국회가 본격 개막하기 전 여론의 물꼬를 한국당 중심의 보수진영으로 틀고 나아가 자신의 당내 입지를 강화하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당내에서 일고 있는 리더십 위기론을 잠재우기 위한 일종의 충격요법으로 보는 시각이 그것이다.

그래서 황 대표의 ‘느닷없는’ 삭발이 성배가 될지. 독배가 될지는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이다.

삭발(削髮). 사전적 의미로는 머리털을 전부 깎는 것을 말한다. 삭발엔 다양한 의미가 내포돼 있다. 불교계, 스포츠계, 연예계, 심지어 일반인까지 각 분야에서의 삭발은 그들 나름의 의미가 있다.

정치적 의미에서의 삭발은 곧 저항이다.

정치권 삭발 투쟁의 역사는 1987년 대선을 앞두고 박찬종 전 통일민주당의원이 시초로 알려져 있다. 그는 당시 김대중·김영삼 후보의 단일화를 요구하며 머리를 밀었다.

이후 정치적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삭발 시위는 이어졌다.

올 들어서는 지난 6월 한국당 김태흠 의원 등 5명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원천무효를 주장하며 단체 삭발을 감행했다.

그로부터 4개월 만인 ‘조국 정국’에서 무소속 이언주 의원의 삭발에 이어 한국당 박인숙 의원이 조 장관 임명에 반발해 삭발했다.

여기에 황 대표가 삭발로 가세함으로써 정치권은 더 크게 출렁였다.

황 대표는 삭발 직후 “문재인 정권의 헌정 유린과 조국의 사법유린, 폭거가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면서 “제1야당의 대표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문 대통령과 이 정권에 항거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이어 황 대표는 “문 대통령에게 경고한다. 더 이상 국민의 뜻을 거스르지 말라. 조국에게 마지막 통첩을 보낸다. 스스로 그 자리에서 내려와 검찰수사를 받으라”고 주장했다.

황 대표의 결기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대여 투쟁동력을 잃지 않고 야권 결집을 노린 특단의 전략으로 읽힌다. 그는 “제가 삭발의 작은 촛불을 들었다. 이 정부가 외쳤던 가짜 촛불이 아닌 진짜 촛불을 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평화당, 대안정치 등 야권에서는 황 대표의 삭발에 비판적이다. 민생을 저버리고 정쟁에만 골몰한 처사라는 것이다. 이들은 철 지난 구시대적 패션, 정치 쇼, 조국 청문회를 맹탕 청문회로 이끈 정치적 무능력 면피용, 존재감 확인 쇼라며 평가절하했다.

일부 언론들은 민생 국회 외면한 채 민심을 대변하려 한다며 삭발을 택한 황 대표를 향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부 네티즌들은 스님 될 것도 아니고 군대 갈 것도 아니면서 머리는 왜 미는지 모르겠다고 비아냥했다.

황 대표의 삭발은 분명 현 정국이 낳은 불행이다. 검찰은 사모펀드 핵심인물로 알려진 조 장관의 5촌 조카를 구속해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조 장관이 펀드투자에 영향력을 미쳤는지가 수사의 초점인 이상 의혹의 실체가 밝혀지는 건 시간문제다. 따라서 조 장관 문제는 검찰에 맡겨두고 결과를 기다리면 될 일이다.

조국 사태 이후 어느 당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파가 늘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다. 주목할 것은 조국 ‘사태’라는 호재에도 불구하고 한국당 지지율은 되레 하락했다는 거다. 이는 곧 ‘정권에 실망했지만 한국당도 싫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죽하면 제1야당 대표까지 나서 삭발을 했겠냐마는 먹고 사는 게 급한 시민들 눈에 정치권에서 하나둘 번지는 삭발이 어떻게 비쳐질지 향후 결과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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