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영 논설위원/유원대 교수

백기영 논설위원/유원대 교수

[동양일보]자조주택은 주민 자신의 노동력을 사용함으로써 저렴한 주택을 제공하는 주택정책의 하나이다. 미국의 일부 도시에서 시행된 바 있는 ‘노동제공형 가옥소유제도’는 도시 내의 방치된 건물에 지원자의 노동력을 투입하여 건물의 가치를 재창출하고, 일정 기간의 임대를 거쳐 지원자에게 건물의 소유권을 부여하는 정책이다. 도시 내 불량주택지에서 저소득층이 손수 집짓기를 통해 주거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이러한 노력은 전 세계적으로 한 세기 동안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다.

자조주택에 관한 이념은 고층건물 도시에 대한 반발과 초기 전원도시운동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영국의 도시계획가 게데스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 만의 도시를 만들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대량 산업주의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불량주택 철거정책은 사회적으로 큰 부작용과 해를 야기하는 정책이며 주민을 더 열악한 주택환경으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여겼다.

노후주택의 열악함, 혼잡, 무질서를 치유하고자 했던 많은 사례들은 단조로웠던 창가에 화분을 두고 벽에는 페인트를 칠하는 등 기본적인 환경개선 부터 출발했다. 이를 통해 주민들의 자발적인 협력이 형성되면서, 점차 좋은 이웃이 되어 지역공동체를 만들어 갔다. 주민들은 청소, 칠 작업, 정원관리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게데스는 인도의 많은 도시에 대한 자문을 수행하면서 자조주택을 도시수복, 보존적 재개발이라는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소규모 철거, 직선화, 부분적 재개발을 통해 깨끗한 골목, 개발공간, 정돈된 정원을 만들게 될 것이라 믿었다. 노동력은 주민들 자신에 의해 제공되며, 정부는 재료를 제공하고 모든 계획은 주민들의 실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실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어느 시대 어느 도시에서나 불량주택 문제는 정책결정자들의 의지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주민 개개인의 능동적 실천 의지와 행동이 뒤따르지 않고는 주택문제의 해결은 고사하고 주택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도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자조주택 실행계획을 통해 공동의 협동을 바탕으로 지역의 주택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많은 비판도 있어 왔다. 자조주택은 주민 조직화의 어려움, 건설의 지연, 건물의 낮은 품질, 대량생산의 어려움, 안전 및 위생상태의 취약함이 뒤따른다는 이유로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는 입장도 존재한다. 자조주택은 실질적으로도 건축비용이 상당한 편이며 그나마 비용의 절감으로 간주할 수 있는 것은 건축비용에 포함되지 않는 주민 개인의 노동력 뿐이다. 또한, 저소득층이 손수 주택을 짓는 것은 궁극적으로 토지소유주에게 가장 큰 이득이 되며 직접 주택을 짓는 개인은 여전히 자본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다. 거주자는 자신이 건축한 주택에 대한 합법적인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비판에도 불구하고, 주택의 건설, 관리에 있어 거주자가 주체가 되어 주요한 결정을 내리고 기여할 수 있는 환경이 개인과 사회의 복지에도 활력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자조주택은 주거공동체를 활성화 함으로써 사회변화의 지렛대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정부는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가? 주택정책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주거환경의 기본 골격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정부는 재정가나 건설자의 역할을 그만두고 촉진자나 조정자가 되어야 한다. 정부는 소규모 주택건설업자, 협동조직들이 건축자재와 전문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 할 수 있다. 일자리가 있는 곳과 가능한 한 인접한 곳에 토지를 제공하고 개량된 기반시설을 제공하는 정부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노후불량 주택가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자녀를 위한 보다 나은 교육환경을 열망하며 주거환경 개선에도 의욕적이어, 강한 결속력을 보이며 도시정책과 제도에도 큰 관심을 보인다.

1980년대 자조주택을 활성화하는 정책들은 찬사를 받는다. 제3세계의 많은 사례에서는 자조주택이 자본가계층과 저소득계층 모두에게 긍정적 영향을 주었으며 사회를 안정화 시킨다. 이러한 자조와 지역사회 참여라는 사상은 주민과의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성공적인 자조주택 재개발 사례를 만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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