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 충북도교육청 총무과 주무관

이준기 충북도교육청 총무과 주무관

[동양일보]영화 ‘기생충’에서 나왔던 대사 “지울 수 없는 냄새”라는 말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성장 환경, 사회적 위치에 따라 만들어진 냄새, 분위기라는 것이 타인에게는 역겨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섬뜩한 기분이었다.

영화에서 내 마음을 흔든 첫 번째 장면은, 창문 너머 세상의 모습이다. 부유한 박 사장이 바라본 창문 밖 세상은 아름다운 정원과 햇살이 비치는 평화로운 세상이지만, 기택이 바라본 창문 밖 세상은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다리와 술에 취해 밤거리를 헤매는 사람들만 보인다. 그래도 가끔은 햇빛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창 밖 세상을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카스테라 사업이 망해 박 사장의 저택 지하에 수년째 살고 있는 근세이다.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노력했음에도, 어느 순간 계층과 계급이 나누어지고, 이로 인해 햇빛을 보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에 씁쓸했다.

두 번째는 하나의 숙주를 두고 두 기생충 가족이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근세와 기택은 박 사장을 사이에 두고, 공존할 기회가 있음에도 서로를 혐오한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상대방을 몰아붙이며 항복을 요구한다. 타인에 대한 배려 같은 것은 찾을 수 없다. 작은 밥그릇을 사이에 둔 생존을 건 싸움만이 있을 뿐이다. 모든 싸움이 그러하듯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마지막으로 기택이 박 사장을 죽이는 장면이다. 딸을 죽인 근세보다 자신과 근세의 몸에서 나는 냄새에 코를 찡그리며, 모멸감(侮蔑感)을 준 박 사장에게 분노했다는 것이다. 단지, “냄새가 난다”라고 말하고, 코를 찡그리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박 사장은 죽어야만 했던 것일까? 아마도 냄새로 표현되는 자신의 현실과 존엄성을 부정하는 박 사장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기택이 박 사장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난다. 때론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원색적인 비난을 하는 사람을 보기도 하고, 지나친 농담과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를 종종 보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은 지나치게 솔직하다”, “사실이 그러하다”는 말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거나, 주변인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사실조차 사회 정의와 옮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보면, 어떻게 해야 마주치지 않을까 고민을 한다.

정의와 옮음보다 친절함을 강조한 영화가 있다. ‘원더(Wonder)’에서는 “옮음과 친절함 중 하나를 선택할 때는 친절함을 선택하라”라는 대사가 나온다. 아무리 정의롭고, 올바른 일이라 하더라도 타인에 대한 배려와 친절함이 없다면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 사장이 조금만 더 친절했더라면, 기택과 문광 가족이 서로의 상황을 이해했더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라는 질문을 해본다. 비를 맞으며, 끝없는 계단을 내려오는 기우와 모든 것을 포기하고 화장실 변기에 앉아 역류하는 오물을 맞으며 담배를 피우는 기정, 지하실에서 피어오르는 돈이 만들어내는 지워지지 않는 냄새, 그 차갑고, 섬뜩한 기운이 나를 계속 쫓아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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