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주 전 중원대 교수

 
이상주 전 중원대 교수
이상주 전 중원대 교수

 

[동양일보]지식이 역사를 만든다. 1905년 을사늑약 1년 전인 1904년 9월 16일 박세화(朴世和1834~1910)는 지식인답게 조선땅 화양구곡에서 ‘시국선언결의대회’를 결행했다. 이는 경천동지할 전무후무한 일대 쾌거요 충효절의의 실천이다.

“사람 팔자 시간문제다”이는 명리학적(命理學的) 관점을 압축한 진리다. 땅 팔자도 시간에 따라 사람에 따라 바뀐다. 계곡(溪谷)은 물이 흐르는 자연 골짜기다. 이 계곡을 구곡(九曲)이라는 문화산수로 땅팔자를 바꾼 위인들이 있다. 그래서 땅의 역사 구곡의 역사 자신의 역사도 바꾸었다.

계곡을 구곡문화로 산수개벽공사를 이룩한 선구자는 율곡 이이이며 계승확산자는 우암 송시열이다. 구곡이라는 중국의 선진 유교문화를 수용하여 창의력을 발휘했다. 역사를 바꿀 지식은 언제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은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니다.

첫째, 의당(毅堂) 박세화(朴世和1834~1910)는 이름이 없던 땅에 용하구곡(用夏九曲)을 정해 용하세계를 만들었다. 그는 1895년 8월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난 그해 겨울, 지금 충북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 용하구곡의 상류인 불억산(茀億山)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서시서사동지(書示書社同志)」를 지었다. 이 글에서 그는 도(道)를 따라 죽고 동요(動搖)가 일어나도 동요하지 않는 것이 의(義)라는 점을 강조하고 유교경전을 공부할 것을 강조했다. 1898년에는 불억산 계곡에 용하구곡을 설정했다. 이곳에서 ‘중국을 존중하고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존화양이(尊華攘夷)사상을 교육강화했다.

둘째, 박세화는 1904년 지금의 화양구곡에서 제자 등 200여명의 유림들을 모아놓고 화양강회(華陽講會)를 결행했다. 화양강회에서 존화양이사상을 특강한 것은 ‘왜국을 척결한다’는 척왜(斥倭) 즉 항일의식을 고취하기 위해서였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기 1년 전이다. 그때 그의 나이 71세로 용하구곡에서 화양구곡으로 출발하려고 할 때 현기증이 나는데 불구하고, 포기하거나 연기하지 않고 화양강회를 강행했다. 박세화가 1905년과 1907년 항일투쟁에 참여한 것도 이런 의식의 실천인 것이다.

셋째, 박세화는 「화양강회일 서심제군자(華陽講會日 書諗諸君子)」 즉 “화양강회일에 이 글을 써서 여러 군자에게 고함”이라는 뜻이다. 피히테의 “독일국민에게 고함”을 연상케 한다. 이 화양강회는 ‘존화양이의식수호결의대회’이며 「화양강회일 서심제군자」는 ‘존화양이의식수호선언서’라 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1894년 이후 1904년까지 조선의 정국은 서구열강과 일제가 국권을 유린하는 행위가 증가하던 시기이다. 박세화는 이런 급박한 시국을 간파하고 1904년 화양강회를 결행한 것이다.

넷째, 철거된 화양서원 터 앞마당에서 박세화가 강회를 강행한 이유는 「화양강회일기」를 통해 잘 알 수 있다. 박세화는 삼상오륜은 유학의 명맥이요, 화양구곡은 유학의 근본이 되는 땅으로 인정했다. 송시열은 제자 권상하에게 신종과 의종 두 황제에게 제사를 지낼 만동묘를 건립하라 지시했다. 박세화가 화양서원터에서 도(道)를 강학하는 것은, 명맥과 본지에서 받은 감응을 살려 유림들에게 존화양이사상을 공고히 하여 당시 정국을 타개할 의지를 강화계도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화(華)는 이(夷)가 될 수 없으며, 사람은 짐승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박세화는 1895년 을미왜변등 당시의 정국으로 보아 조선이 일제의 침탈의 위기에 처할 것을 감지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각자 자기 도리와 서로의 단결한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존화의 도가 망하지 않아 나라가 안정을 되찾을 것이라 사기를 진작시키고 척왜의지를 강화하기 위해 화양강회를 개최한 것이다.

다섯째, 이 강회에서 「만동묘정비문(萬東廟庭碑文)」․「필명(畢命)」․「백록동규(白鹿洞規)」를 낭송했다. 모두 존화양이의식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섯쩨, 1904년부터 1910년 경술국치 이후인 1916년까지 우암을 숭상하고 존화양이의식을 견지한 유림들이 존화양이의식과 항일의식을 공고히하기 위해 화양구곡을 탐방하고 만동묘에 제향한 사례는 더러 있다. 그러나 시국에 대한 대처방안과 존화양이의식에 대한 특강을 하지는 않았다.

이렇듯 박세화는 유학자로서 그 시대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화양구곡에서 척왜의식을 고취앙양하는 공전절후의 화양강회를 감행하여, 새로운 역사를 창조했으며 자신은 역사의 인물이 되었다. 그의 지식은 오로지 유학이었다. 지식이 자신과 사회 국가의 미래를 바꾼다. 지식에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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